[프랑스] 화려함과 호화로움의 극치, 베르사유
파리의 서쪽으로 20Km 지점에 있는 베르사유(Versailles)는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의 끝을 보여 주는 궁전과 광활한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실제로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며 베스트 셀러 순정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로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베르사유는 시내와 교외를 연결하는 교외 전철(RER)을 이용하여 갈 수 있었는데 파리 시내에서 약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베르사유 역에서 밖으로 나와 처음 발견한 것이 별다방(Starbucks)이었는데 간만에 발견한 그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모닝 카라멜 마끼야또 한 잔을 사 들고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베르사유 궁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궁전으로 가는 길은 울창한 가로수가 늘어서 있어서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 앞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나는 뮤지엄 패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행 안내 책자에 뮤지엄 패스 소지자는 단체 방문객용 입구(B)로 줄을 서지 않고 간단하게 입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표소 옆에 있는 안내 센터에 들러 지도를 한 장 얻은 후(감격스럽게도 한글로 된 지도가 이었다) 줄이 없는 단체 방문객용 입구(B)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뮤지엄 패스를 보여 주고 입장하려고 하는데 덩치 큰 아저씨가 내 길을 제지하고 나섰다. '뭐 이런 개념 없는 놈이 다 있어?'하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이곳으로는 입장하지 못하고 개인 방문객용 입구(A)로 가야한다고 얘기하는데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창피하고 뻘쭘하여 뭐라 대꾸도 못 해보고 물러나와 긴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알고 보니 여행 책자의 정보가 잘못된 것이었는데 '패스 소지자'도 개인 방문객용 입구(A)로 입장해야 한다는 표시를 확인하고는 책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개인 방문객용 입구(A)를 표시하는 표지판에 '패스 소지자'도 적혀 있었다. 책을 너무 과신했던 내가 잘못이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줄을 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고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오디오 가이드를 받았는데 별도의 비용 없이 그것도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도 여행 책자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여행 책자의 내용이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100%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거나 오디오 가이드 없이 대충 훑어 보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너무나 좋았다. 꼼꼼하게 보다 보니 궁전 내부를 다 둘러보는 데 거의 2시간이 걸렸는데 중요한 곳들을 한번 사진으로 살펴보자.
이곳은 왕이 예배를 보던 곳이라고 하는데 일반 성당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천장과 화려한 천장화가 일품이었다.
접견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과 천장화. 마치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그림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접견실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조각상들.
온통 금으로 장식된 벽면. 이곳 궁전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 거울의 방. 길이 75m, 높이 13m의 홀로 궁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 1919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유 조약이 이 방에서 체결되었다고 한다.
왕비의 침실. 루이 14세의 왕비부터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3명의 왕비가 사용했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 침대의 왼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도망치다가 시위대에 잡히기도 했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식탁. 식탁 주변으로 등받이 없는 의자들이 배열되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왕과 왕비가 식사하는 모습을 주요 관리들이 그 의자에 앉아 지켜 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유명한 작품인 나폴레옹의 대관식.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두 점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중 하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곳에 걸려 있다.
왕세자의 침실.
왕세자의 서재.
왕세자의 교육을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는 지구본.
산뜻한 느낌의 왕세자비 침실.
궁전 내부를 다 둘러본 다음 오디오가이드를 반납하고 정원으로 나왔다. 베르사유의 진정한 볼거리는 정원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내 느낌상으로는 과천 서울 대공원의 2~3배는 되어 보였다. 아래의 그림은 베르사유 안내 지도인데 지도로만 봐도 정원의 규모가 엄청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끝이 없는 듯이 드넓게 펼쳐진 정원의 모습. 자로 잰듯이 반듯반듯하게 심어진 관목들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프랑스식 정원의 진수를 바로 이곳에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대륙의 기상을 보여 주는 듯했다.
대운하가 시작되는 지점. 물길이 마치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듯 실로 그 규모가 엄청났는데 십자 모양의 이 대운하는 그 길이가 1650m에 이른다고 한다.
대운하기 시작되는 지점에서 여러 갈래로 가로수길이 이어졌는데 키 높은 나무들이 줄을 맞춰 늘어선 모습들이 너무나 시원스러웠다.
낭만적인 가로수길을 따라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으로 이동했다. 거리가 좀 되다 보니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의 모습. 1687년에 완성된, 장미색과 흰색의 대리석이 어우러진 호화로운 별궁으로 루이 14세가 퇴임 후 부인과 여생을 보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랑 트리아농 내부의 모습들. 별궁답게 고급스러우면서도 약간은 경쾌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랑 트리아농은 양쪽의 건물 사이에 이런 빈 공간이 존재했는데 진귀한 장미색 대리석 기둥이 너무나 우아해 보였다.
그랑 트리아농에서 프티 트리아농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정원. 프랑스식 대형 정원을 축소해 놓은 듯 아담했지만 프랑스식 정원의 반듯반듯한 모습만은 그대로였다.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1762년에 루이 15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루이 16세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랑 트리아농에 비하면 그 규모도 작을뿐더러 내부의 모습도 소박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었다.
프티 트리아농 내부의 모습들.
프티 트리아농 근처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의 모습. 이 나무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니 마리 앙투아네트 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영지로 가는 길에 만난 기발한 모습의 관목. 마치 코끼리 가족들이 떼를 지어 가고 있는 모습과 같지 않은가?
마리 앙투아네트 영지는 루이 16세가 1774년에 마리 앙투아네트에 하사한 땅으로 이곳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꾸며진 왕비의 촌락이 있다. 왕비의 촌락은 12채의 전통 가옥과 호수를 통해 전형적인 프랑스 전원 풍경을 재현해 놓은 것인데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베르사유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럼 그 매력 속으로 한번 푹 빠져 보도록 하자.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카메라를 갖다 대는 곳마다 모두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런 곳이 우리 나라에도 있었다면 항상 사진 촬영 하러 온 신혼 부부들로 북적거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개구쟁이 스머프가 살던 마을이 이런 마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아기자기한 모습에 별로 크지 않은 촌락이었지만 한 시간 정도 머물면서 참 분주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어딘가에 앉아서 쉬지도 않고 꼬박 5시간 정도를 서서 다녔더니 다리는 물론이고 허리도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영지까지 올 때에는 힘든 줄 모르고 왔었는데 다시 출입구가 있는 궁전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좀 갑갑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영지에서 궁전 초입까지는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가로수길이 나 있었는데 그 거리가 걸어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실로 엄청난 길이었다. 국내에서 나름 유명한 남이섬이나 담양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이 길에 비교하면 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힘들게 걸은 끝에 궁전 앞 정원에 도착했다. 높은 담벼락 같은 관목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길을 걸으면서 관목림 안쪽의 모습이 궁금하여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정원 중앙을 가로질러 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고깔 모양의 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쩜 이리 자로 잰듯이 반듯하고 일정한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분명히 표지판에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었는데 당당하게 그곳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분이 계셨다. 참 대단한 강심장이라는 생각과 함께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원을 나가는 길에 바라본 베르사유 궁전의 모습. 광활한 정원을 향해 큼직큼직하게 나 있는 창문들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으며 사치스러운 내부의 모습에 비해서는 오히려 단순해 보이는 외관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베르사유를 찾았었다. 일반적으로 궁전이나 성 등을 실제로 가 보면 기대했던 것만큼 감동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르사유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스러움과 규모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반나절을 생각하고 갔던 나에게 하루를 꼬박 소비하게 만들었다. 6시간 정도를 둘러봤는데 사실 그 많은 관목림들과 대운하 주변은 둘러보지도 못하였으니 정원만을 다 둘러보려 해도 이틀 정도는 소요될 듯 싶었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는 대국 프랑스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