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Laken) 사이(Inter)라는 뜻을 가진 인터라켄(Interlaken)은 툰(Thun) 호수와 브리엔츠(Brienz) 호수 사이에 자리잡은 아담한 도시이다. 일반적으로 융프라우요흐나 실트호른 등을 가기 위한 베이스 캠프로 유명한 곳이지만 도시 자체도 너무나 아름다워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곳이다.
루체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인터라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 동역까지는 정확하게 2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다음의 사진들처럼 창 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에 지루할 겨를이 없었다.
인터라켄에는 동역(Ost)과 서역(West)가 있는데 루체른에서 출발한 열차는 동역에서 정차했다. 숙소가 서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서역행 열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10~20분 간격으로 자주 운행되어 마치 셔틀 버스를 타는 느낌이 들었다. 동역을 출발한 열차는 3분 만에 서역에 도착했다(실제로 동역과 서역은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숙소에 체크인 하자마자 툰 호수에서 운항되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인터라켄 서역 뒷편의 선착장으로 갔다. 인터라켄에서는 인접하고 있는 2개의 호수,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에서 각각 유람선을 탈 수 있는데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 있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툰 호수가 브리엔츠 호수보다 크며 호수 주변에 유명한 고성과 아름다운 마을들이 위치해 있어 좀더 인기가 있는 편이다. 툰 호수에서 운항되는 유람선은 매일 11시 15분과 14시 10분에 출발하는데 나는 14시 1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하게 되었다.
툰 호수 유람선은 이렇게 생긴 유람선인데 1층은 2등석, 2층은 1등석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나는 성인용 1등석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떳떳하게 2층의 가운데 앞 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럴 때면 살 때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던 유레일 패스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르겠다.
부푼 기대를 안고 드디어 출발~. 이런 수로 같은 곳을 벗어나야 탁 트인 툰 호수와 마주하게 된다.
툰 호수 주변의 마을 풍경들. 한결같이 에머랄드 빛 호수와 참 잘 어울리는 모습들이었다.
절벽을 따라 낸 도로. 터널을 뚫지 않고 절벽을 따라 만든 길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스위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외딴 곳에 위치한 조그만 집. 차고 대신에 보트 보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보트가 자가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참 이색적이었다. 도를 닦거나 고시 공부를 하는데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옥빛 호수, 높은 산, 푸르른 숲, 그리고 산뜻한 건물들. 그림 속에서나 볼 법한 싱그러운 풍경들이 곳곳에 펼쳐졌다.
범상치 않은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가까워질 수록 그 자태가 더욱 빛이 났는데 건물의 정체는 알지 못한 채 그냥 사진에 담기에 열중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오버호펜(Oberhofen) 성이었다. 오버호펜 성은 12세기에 오버호펜 왕조에 의해 건축된 성으로 달력이나 퍼즐의 단골 모델로 사용될 만큼 아름다운 성이다. 어쩐지 때깔이 좀 남다르다 했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성을 알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좀 아쉽기는 하다.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툰 호수에서 만난 또 다른 성들. 이들도 나름 유명한 성들인데 내가 또 몰라본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된다.
옥빛 호수와 멋진 풍경들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덧 종착지인 툰(Thun)에 도착했다. 유람선이 출발한 지 2시간 15분 만이었는데 짧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출발지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비교적 좁은 수로를 따라 올라간 곳에 선착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선착장 근처에 위치한 툰 역에서 인터라켄행 열차를 탔다. 인터라켄까지 약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차창밖으로는 툰 호수의 시원스런 풍경이 펼쳐졌다. 인터라켄 역에 도착해서 숙소 주인장이 추천해준 산책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아레(Aare) 강에 도착했을 때 그 맑고 푸르른 강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한 에머랄드 빛의 강물은 보는 이의 가슴에 청량감을 가득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아레 강을 따라서 예쁜 집들이 들어서 있고 산책로가 길게 이어졌는데 너무나 쾌적하고 빼어난 풍광에 마음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강변에서 나름 자전거를 탔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푸르른 아레 강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백조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부러움 때문이었는지 녀석들의 자태가 더욱 고고해 보였다.
사진 찍는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백조를 보고 흠칫 놀라 뒷걸음을 치기까지 했는데 완전히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아레 강의 아름다운 풍경들. 한 폭의 수채화 같다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레 강변에서의 산책을 마치고 아레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쿠잘(Kursaal) 카지노로 이동했다. 마치 식충식물처럼 관광객들을 유인하기 위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표시가 없으면 카지노라고 생각 못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카지노 앞쪽에는 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프스의 모습이 너무도 멋들어졌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강촌 식당'이라는 이름의 한인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김치 찌개 하나에 콜라 한 잔을 시켜 먹었는데 음식 값이 무려 37,000원이나 나왔다. 아, 여기가 스위스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다음날 'Brasserie 17'이라는 이름의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아스파라거스 수프, 비프 스테이크, 그리고 콜라까지 해서 48,000원에 푸짐하고 맛있게 먹은 것이랑 비교하면 좀 심하기는 했다. 내 생에 가장 비싸게 먹은 김치 찌개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반나절 동안 툰 호수와 인터라켄을 둘러 보면서 조금은 흐린 날씨가 옥의 티였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 흐린 날씨에도 그 아름다움은 빛을 잃지 않았다. 융프라우요흐에 가기 위해 단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닌 자체적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임을 인터라켄은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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