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본부가 위치하고 있어 올림픽의 도시로 잘 알려진 로잔(Lausanne), 그곳에서 열차로 3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몽트뢰(Montreux)가 위치하고 있다. 스위스 지도 상에서 보면 남서부에 위치한 몽트뢰는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레만(Leman) 호수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용 성(Chateau de Chillon)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프랑스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데 지명에서도 나타나듯이 불어가 주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몽트뢰는 전형적인 휴양 도시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호텔의 비용이 비싼 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로잔에 숙소를 잡았다. 로잔은 약간은 대도시의 분위기가 풍기는 현대적인 도시였는데 루체른이나 인터라켄 등의 작은 도시에서 느꼈던 스위스의 아늑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차림으로 비토시용(Veytaux-Chillon)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시용 성을 만나 보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레만 호를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시용 성에 가 볼 생각이었으나 로잔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유람선 시간을 놓쳐서 아쉽게도 열차를 타야만 했다. 내가 열차를 탔을 때가 초등학생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는데 초등학생들에게 내가 신기한 볼거리였나 보다. 불어로 나에게 뭐라고 계속 물어 보는데 불어라면 일자무식인 내가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다. 난감해 하며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만을 반복하던 나에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꼬마들의 질문을 영어로 통역해 줬는데 그 내용은 바로 내가 중국인인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헐, 내가 어딜 봐서 중국인처럼 보인단 말인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세상 물정을 아직 잘 모르는 꼬마들이니까 그냥 용서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밝은 미소와 함께 얘기해 줬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열차를 탄지 35분 정도가 경과하여 비토시용 역에 도착했다. 비토시용 역은 시골 마을의 간이역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휴양지의 쉼터처럼 그 모습이 너무나 산뜻하고 깜찍했다.
비토시용 역 바로 아래에 시용 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 있었는데 저 멀리 살짝 모습을 드러낸 시용 성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시용 성의 모습들. 시용 성은 9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12~13세기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규모가 커졌다. 이 성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는 상인들에게 통행세 및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지어졌으며 한때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Byron)이 이곳을 방문하고 '시용의 죄수'라는 작품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명해지기 시작한 시용 성은 그 후 스위스 성들 가운데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성이 되었다고 한다.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절묘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호수의 경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은 독일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보고 왔기 때문이었는데 내 눈높이가 참 많이도 올라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용 성에서부터 몽트뢰 시내까지는 레만 호수변을 따라 길게 산책로가 이어졌는데 걷는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뭇 사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요염한 여인의 자태. 이런 작품도 한 1000년쯤 지나면 밀로의 비너스처럼 유명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워낙 넓은 호수라서 얼핏 보면 바다 같이 보이기도 했다. 레만 호수는 그 길이가 72Km에 달하는 스위스 최대의 호수인데 루체른이나 인터라켄에서 봤던 호수처럼 맑고 깨끗한 청량감을 주지는 못하였다.
호수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산뜻한 산책로.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졌다.
특이한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호텔. 몽트뢰의 호텔들이 가격이 비쌀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산책로 곳곳에는 넓은 레만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햇볕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에이즈로 세상을 달리한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왜 이곳에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프레디 머큐리가 제 2의 고향으로 삼을 정도로 좋아했던 곳이 바로 몽트뢰였다고 한다. 1978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몽트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음반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프레디 머큐리와 몽트뢰의 인연이 범상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색에 잠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사색에 잠긴 여인의 뒤태가 고혹스럽게 느껴졌다.
너 참 특이하게 생겼다. 네 이름은 뭐니?
어느덧 해는 저물어 가고 해질 무렵 레만 호수의 풍경은 아늑하면서도 시원스러운 풍경이었다.
몽트뢰 시내에서 만난 멋드러진 호텔. 화려한 차양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용 성에서 몽트뢰 시내 부근까지는 호반 산책로를 따라서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였다. 너무 짧게만 느껴졌던 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곳을 그냥 떠날 수 없어 한동안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레만 호수가 비록 제네바에서 로잔을 거쳐 몽트뢰까지 넓게 걸쳐 있지만 레만 호수의 낭만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곳은 바로 몽트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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