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프로방스(Provence)는 나에게 로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파주에 있는 프로방스나 소렌토, 솔레미오 등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에서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프로방스풍의 인테리어에 대해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원조' 프로방스에 대해 자연스레 큰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프로방스는 내게 언젠가 꼭 한번 가 봐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와의 경계에 있는 지방으로 론 강 동쪽 지중해 기슭에 위치해 있다.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도시로는 마르세유(Marseille), 아비뇽(Avignon), 아를(Arles)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프로방스의 모든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아를이다. 아를은 기원전 46년 론 강가에 로마의 식민지로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로마 시대의 프로방스 유물 중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고대 원형 경기장과 고대 극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광기 어린 예술혼을 불태웠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북쪽 외곽에 위치한 아를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라마르탱 광장(Place Lamartine)의 시원스런 분수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라마르탱 광장은 고흐가 실제로 살았던 집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1944년에 있었던 폭격으로 현재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광장 한편에는 마을의 입구 역할을 하는 카발르리 문(Portes de la Cavalerie)이 있었고 그 양옆으로는 옛 성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이 있었다.
카발르리 문을 통해 마을로 들어간 후 뒤돌아본 모습.
마을에 들어서서 조금 걷다 보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갈림길. 가운데 위치한 건물의 벽 장식이 범상치 않아 무슨 역사적인 건물인가 하고 자세히 살펴봤더니 그냥 '바'였다. 살짝 허탈한 감정을 누르며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또다시 마주한 갈림길. 고대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서 그런지 참 복잡한 구조였다.
이번에는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골목길 사이로 고대 원형 경기장의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덩굴식물로 외관을 장식한 멋스런 건물.
골목길에서 만난 옷가게들.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중해에 인접한 남쪽 지방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건물 외관에 덩굴식물을 활용하여 장식을 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건물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마주한 고대 원형 경기장. 서기 90년에 지어졌으며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지금은 1, 2층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3층 규모였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는 노예들과 검투사들이 피비린내 나는 경기를 벌이던 참혹한 현장이었으며 지금은 투우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갔을 때 투우 경기장의 일부는 보수공사를 위해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
6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원형 경기장 내부로 들어섰다. 경기장의 형태만 남아 있는 콜로세움에 비해서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조금은 놀라웠다. 그리고, 그 옛날 이렇게 큰 경기장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많은 부분에서 복원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투우 경기의 모습은 어떨지 사뭇 궁금했다.
고대 원형 경기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대 극장의 모습. 기원전 1세기에 지어진 극장으로 연극, 무언극 등이 공연되었던 곳이다. 반원형 구조의 관람석에는 1만 명까지 앉을 수 있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고대 원형 경기장과는 다르게 이곳은 복원되지 않고 파손된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약간은 황량하게 느껴졌다.
고대 극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생 트로핌 성당(Eglise St. Trophime). 1078~1152년경에 지은 프로방스 지방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생 트로핌 성당 옆에 딸려 있는 수도원 건물. 12세기 중반에 만든 유서 깊은 곳으로 생 트로핌 성당과 함께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한다.
공화국 광장(Place De La Republique)의 모습.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왼편으로 시청사(Hotel de Ville)가, 오른편으로 생 트로핌 성당과 수도원이 위치하고 있어서 명실상부하게 아를의 중심이라고 할만한 곳이다.
반 고흐의 정원(Espace Van Gogh). 1889년에 반 고흐가 머물렀던 병원 부지에 만들어진 정원이다. 마을 곳곳에서 반 고흐와 관련된 장소들을 만나게 되는데 반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뜻깊은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길 가던 중에 만난, 느낌이 있는 레스토랑의 모습. 프로방스풍이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론 강(Le Rhone)가로 이동하여 트랭크타유 다리(Pont de Trinquetaille) 위에 올라섰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론 강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반 고흐의 작품에도 많이 등장했다고 하여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넘 기대가 컸었나 보다.
강변의 모습도 생각했던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강변을 따라 심어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삭막함을 좀 완화해 주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로마 시대 공동 욕탕(Thermes de Constantin).
그리고, 레아튀 미술관(Musee Reattu). 벽에 지도를 그려 놓은 듯 담쟁이에 둘러싸인 외벽이 인상적이었다.
강변을 걷다가 발견한 깜찍한 레스토랑 건물. 아를에서 볼 수 있는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독특하고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슬슬 허기가 느껴져서 낮에 봐 두었던 고대 원형 경기장 근처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프랑스 요리를 본토에서 먹어 봐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Le Grillon'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는데 단돈 26유로에 풀코스 세트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먹어 봤던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의 3가지 음식이 아니라 메인과 디저트 사이에 하나의 음식이 추가된 4가지 음식이 나왔는데 그 양과 맛이 모두 훌륭했다. 역시 요리의 본고장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우, 훈제 연어, 아몬드를 곁들인 샐러드(Green Salad with Shrimps, Smoked Salmon, and Sliced Almonds)
페퍼 소스의 소고기 스테이크(Sirloin Steak with Pepper Sauce)
라벤더 꿀을 얹은 염소 우유로 만든 치즈(Goat Cheese with Lavender Honey)
누가 아이스크림(Nougat Ice-cream)
너무나 맛있게 먹어서 음식의 이름을 알아 두기 위해 메뉴판을 다시 보여달라고 하여 사진에 담았다. 처음에 이 메뉴판을 봤을 때 곳곳에 그려진 메뚜기를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말로만 들었던 메뚜기 요리를 어떻게 먹여야 할까 하는 걱정에 메뉴판에 적혀있는 글자가 불어인지 영어인지 조차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메뚜기라는 단어가 혹시 들어 있지 않은지 유심히 살펴보고 조심조심 주문을 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관광지의 느긋함 때문이었는지 코스 요리가 천천히 나오는 바람에 혼자서 식사를 했음에도 1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식사가 끝났을 때에는 어둠이 내려 있었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고흐의 작품으로 유명한 '밤의 카페'가 있다는 포룸 광장(Place du Forum)에 들렀다. 밝게 불을 밝히고 광장 한가운데에는 촘촘하게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밤의 카페는 포룸 광장의 한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불어로 'Le Cafe La Nuit'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불어를 전혀 몰랐지만 느낌으로 이것이 '밤의 카페'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유명세 때문인지 밤의 카페는 유독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도시인 아를을 둘러본 후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프로방스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과장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방스풍이라고 내세운 인테리어들은 실제 프로방스에서 보고 느낀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선명한 파스텔 색감을 사용한 반면에 실제 프로방스에서는 약간은 물이 빠지고 낡고 바랜 듯한 색감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방스를 실제로 본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화려함보다는 아늑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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