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 자동차 회사의 TV 광고 중에 '융프라우로 가는 길, ***를 보았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광고가 있다. 이렇게 광고에까지 등장하는 융프라우는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알프스의 하이라이트로 스위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스위스를 가 보지 않은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융프라우는 그 높이가 4158미터에 이르며 주변에 3500미터 이상의 고봉들을 거느리고 있어 위풍당당한 풍채를 뽐낸다.
일반적으로 3000미터 이상 되는 산 하면 일반인들이 감히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물며 4000미터가 넘는 융프라우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스위스는 그걸 가능하게 해 놓았다. 융프라우의 바로 아래에 기차역을 만들고 그곳까지 철로를 놓아 기차를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인데 그곳이 바로 융프라우(Jungfrau)의 아래(Joch)라는 뜻을 가진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이다. 융프라우요흐는 3454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이란 뜻에서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으로 불리기도 한다.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알레치 빙하와 만년설에 덮여 있는 융프라우의 멋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융프라우요흐에 가는 방법은 아래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린델발트(Grindelwald)를 경유하여 왼쪽 능선을 오르는 방법과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을 경유하여 오른쪽 능선을 오르는 방법이 있다. 기본적으로 열차를 타고 한번에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번에 걸쳐서 열차를 갈아타야만 한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린델발트나 라우터브루넨까지 이동한 다음 열차를 갈아타고 클라이네 샤이데크(Kleine Scheidegg)까지 이동한 후 이곳에서 최종적으로 융프라우요흐행 열차로 갈아타는 방식이다. 열차 시간은 환승 시간을 고려하여 약 10분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출발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환승에 큰 불편함은 없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융프라우 철도 할인 쿠폰과 유레일 패스를 제시하면 정상가 186.2CHF의 약 30% 할인된 가격인 130CHF(약 16만원)에 융프라우요흐 왕복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왕복 티켓과 함께 'Free Noodle Soup'이라고 적혀 있는 컵라면 교환 쿠폰이 지급되는데 이 컵라면 쿠폰은 한국 관광객들에게만 지급되는 특별한 것이다. 나중에 융프라우요흐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이 쿠폰을 제시하면 뜨거운 물이 채워진 컵라면과 나무 젓가락을 받을 수 있다.
스위스 여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융프라우요흐 등반은 나에게 있어서도 스위스 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만큼 큰 기대를 안고 다녀왔던 그날의 생생한 기억을 여기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융프라우요흐에 다녀오는 방법 중에 나는 왼쪽 능선(그린델발트 경유)으로 올랐다가 오른쪽 능선(라우터브루넨 경유)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좀더 알프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라우터브루넨을 자세히 둘러보기 위한 것이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열차를 타고 30여 분 만에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그린델발트는 1034미터 지점으로 아래의 사진처럼 푸르른 초원들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린델발트에서 클라이네 샤이데크행 열차로 갈아탔다. 산을 오르면서 열차의 차창 너머로 시원스런 알프스의 전경들이 펼쳐졌는데 창문을 열고 사진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정신을 뺏기고 있는 사이 열차는 30여 분 만에 클라이네 샤이데크에 도착했다. 클라이네 샤이데크는 2063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린델발트를 경유한 열차와 라우터브루넨을 경유한 열차가 모두 모이는 곳이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는 높게만 보였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이제는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이 융프라우요흐에 가까워졌음을 실감하게 했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최종 목적지인 융프라우요흐행 열차로 갈아탔다. 융프라우요흐를 향해 오르는 열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운행하기 시작했다. 아이거반트(Eigerwand, 2865m)와 아이스메어(Eismeer, 3160m)에서는 전망을 조망할 수 있도록 잠깐씩 정차했는데 특히 '얼음(Eis)의 바다(Meer)'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이스메어에서 바라본 얼음폭포(빙하 덩어리들이 폭포처럼 굴러 내려서 만들어 낸 모습)는 장관이었다.
터널을 계속 오르던 열차가 드디어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클라이네 샤이데크를 출발한지 50분 만의 일이었다. 열차에서 내렸는데도 터널 안이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빙하로 안내하는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은 끝에 밖으로 나왔는데 드넓은 눈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도 눈이 부셔 차마 눈을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여서 썬글라스를 꺼내 쓴 후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져진 단단한 눈밭을 걷는 기분은 스키장에서 느꼈던 그것과는 다른 생경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게 그냥 눈밭이 아니라 그 유명한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의 일부였던 것이다.
스핑크스(Sphinx) 전망대가 위치한 봉우리의 모습. 암반을 굴착하여 터널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저런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내부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571미터 위치에 있는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바깥의 공간으로 나갔더니 그 길이가 23Km에 달하는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장엄한 풍경에 내 가슴이 벅차 올랐다.
스핑크스 전망대의 입구에는 기둥에 아래와 같이 융프라우요흐의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람마다 인증샷을 찍기 위해 치열하게 자리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라고 빠질 수 없었다. 신혼여행 온 부부의 도움을 받아 나도 이곳에서 간신히 인증샷을 남겼다.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내려와 카페테리아로 이동했다. 카페테리아에서 인터라켄 동역에서 받았던 쿠폰을 제시하고 컵라면을 받아 옆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이블이 한 6개 정도가 있었는데 온통 한국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물론 융프라우요흐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특별했다.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배를 채운 후 얼음 궁전(Ice Palace)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분 남짓 둘러볼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참 좋아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 궁전에서 나와 플래토우(Plateau) 전망대에 올랐다. 아쉽게도 구름이 잔뜩 낀 융프라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나 가까운 곳에 모습을 드러낸 4107미터의 묀히(Mönch)는 구름이 깃든 모습이 영검스럽게 느껴졌다.
융프라우요흐에서 열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데크로 내려왔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이번에는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라우터브루넨행 열차를 탔는데 내려가는 길에 아래의 사진과 같이 웅장한 융프라우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융프라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라우터브루넨 근처에 도착했다. 창 밖으로 펼쳐진 라우터브루넨의 모습은 내게 설레임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우터브루넨 역에서 내려서 마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깍아지르는 절벽들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명물인 트뤼멜바흐(Trümmelbach) 폭포를 찾아가기 위해 관광 안내소에 들러 지도 하나를 얻었다. 원래는 걸어서 가 볼 생각이었는데 트뤼멜바흐 폭포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최종 입장 시간 17:00) 이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걸어서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얘기를 듣고 급하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버스 요금은 3.4CHF) 10분 만에 트뤼멜바흐 폭포 앞에 도착했는데 최종 입장 시간을 불과 10분 앞둔 시간이었다. 하마터면 여기까지 와서 허탕치고 갈 뻔했다.
트뤼멜바흐 폭포(입장료 11CHF)에 들어섰는데 특이하게 대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아래의 사진에서 좌측의 터널 모양 입구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층부로 올라가서 트뤼멜바흐 폭포와 마주하게 됐는데 바위 틈 사이를 회오리치듯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너무나 장관이었다. 천둥같은 소리와 함께 흘러내리는 폭포수 앞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자연에 너무 동화된 나머지 여기저기서 괴성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단부로 계속 내려가면서 다양한 폭포의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봐 왔던 폭포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의 폭포였다.
트뤼멜바흐 폭포에서 라우터브루넨 역으로 돌아갈 때에는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길을 따라 걸었다. 푸른 초원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는 느낌이 무척 싱그러웠으며 마치 내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라우터브루넨 역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인 슈타우바흐(Staubbach) 폭포를 만나게 됐다. 슈타우바흐 폭포는 높이가 무려 300미터에 달하는 폭포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목을 계속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아래의 사진처럼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슈타우바흐 폭포 안쪽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준비해 간 방수 재킷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는데 방수 재킷이 없었으면 차마 폭포 안쪽까지 들어갈 엄두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폭포 안쪽으로 의외의 넓은 공간이 있어서 사람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는 길이 있을 정도였다. 도를 닦으시는 분이나 창을 하시는 분들이 보면 정말 좋아했을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폭포 안쪽 공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물이 떨어지는 지점에 커다른 바위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신비스러웠다. 아마도 물에 포함된 석회 성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폭포 바로 아래에서 보면 엄청난 낙차 때문에 물이 흘러내린다는 표현 보다는 흩뿌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물안개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라우터브루넨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온한 마을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내가 객이 아닌 주인인 것처럼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융프라우요흐에 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들러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터라켄을 향해 떠날 수 있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찾았던 융프라우요흐는 기대 이상이었고 명불허전이었다. 그 높은 곳까지 철로를 놓은 스위스인들의 저력과 함께 자연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내는 인간의 강인함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편하게 다녀오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까지 올라 봤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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