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얻는 지혜

눈먼 자들의 도시

늘푸르른나 2011. 2. 10. 16:50
  오 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 창문을 통해 흥분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단 두 마디만 외치고 있었다.

 

  "눈이 보여."

 

   이미 시력을 회복한 사람도, 막 눈이 보이기 시작한 사람도 같은 소리를 외쳤다.

 

  "눈이 보여, 눈이 보여."

 

  이제 사람들이 "눈이 안 보여."하고 소리치던 것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듯했다. 사팔뜨기 소년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제가 보여요? 제가 보여요?"

 

  아마 꿈에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에게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의사의 아내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의사가 대답했다.

 

  "저 아이도 잠을 깰 때쯤이면 치료가 됐을 거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지금 벌써 시력을 회복하고 있겠지. 하지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은 충격받을 거야."

 

  "왜요?"

 

  "백내장 때문에. 전에 진찰을 한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백내장이 많이 악화되었을 거야."

 

  "그럼 계속 눈이 안 보일까요?"

 

  "아냐. 다시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모든 게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가 수술을 해줘야지. 몇 주 뒤면 볼 수 있을 거야."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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