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얻는 지혜

큐잉 이론(Queueing Theory)

늘푸르른나 2011. 2. 7. 16:23
  40대 K씨는 소도시에서 콜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최신 GPS로 무장한 택시와 사내 전산 시스템으로 택시의 운행 정보를 파악해 과학적인 경영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모든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토요타 경영에 관한 책을 읽고 '마른 수건도 짠다.'는 토요타 경영 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토요타 경영에서 강조하는 지속적인 비용 절감과 경영 효율 사례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에게 귀감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비효율적인 부분을 찾고 비용 절감을 과학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첫 작업으로 지난 몇 개월간의 택시 운행 관련 데이터를 모두 뽑았다. K씨는 승객을 태우거나 승객 호출을 받고 이동하는 '작업 중인 택시'와 '노는 택시'의 각각의 수를 10분 간격으로 기록했다. 근 한 달 동안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택시의 작업률이 7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평균적으로 10대 중의 7대는 영업 중이지만 나머지 3대는 그저 놀고 있다는 뜻이었다. 

 

  고객의 호출을 받아 출동한 후 고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도착해 서비스를 완료하는 게 택시의 일이다. 택시가 일을 할 때만이 실제 매출이 증가한다. 그런데 운행하는 전체 택시들 중 일하는 택시가 7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전체 택시의 30퍼센트는 매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K씨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총 40대 택시의 70퍼센트는 28대다. 산술적으로는 28대의 택시만으로 충분히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 계산을 근거로 나머지 12대의 택시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차를 다시 파는 게 아쉬웠지만 비효율은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토요타 경영의 가르침은 그에게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총운영 자산의 30퍼센트를 처분했으니 이제 그의 계산대로라면 운영비는 감소하고 수익은 더 올라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 반대의 결과가 온 게 아닌가!

 

  28대로만 운행을 시작하자 고객들의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40대로 운행할 때는 고객들이 택시를 기다리는 평균 시간이 15분이었는데 이제 1시간이 넘는 건 다반사였다.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다 지친 고객은 그냥 거리에서 일반 택시를 잡아 타거나 호출을 취소하고 다른 콜택시 회사를 찾았다. 택시 기사들이 한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신 후 다음 손님이 있는 곳으로 신호 위반에 속도 위반까지 해 가며 쏜살같이 달려가도 역부족이었다. K씨는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 호출이 갑자기 늘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어 호출 수를 검토했다. 하지만 40대로 운행할 때나 28대로 운행할 때나 호출 수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결국 택시들은 도시를 이리저리 바삐 배회하기만 할 뿐 영업 수익은 올리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100퍼센트 작업률에 영업 이익은 곤두박질쳤다.

 

  괜히 마른 수건 짜다 쓸데없이 진만 빼고 수건만 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일까? 비용 절감을 위해 수요에 맞게 택시 수를 맞췄는데 호출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런 현상을 수학으로 해석한 것이 바로 '대기 이론'이다. 대기자 수와 대기 시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이론을 '대기 이론' 혹은 '큐잉 이론(Queueing Theory)'이라 한다.

 

  상점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 놀이동산에서 탑승 차례를 기다릴 때 등등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현대인의 일상이다. 비즈니스 운영에서도 이 '기다림'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식당 종업원 수에 따라 식당 손님들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결정되고 콜센터 직원 수에 따라 고객 대기 시간이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공장의 기계 대수에 따라 사이클 타임이 결정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에 따라 고속도로 차량 소통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이 대기 시간은 고객 서비스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무작정 기다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고객 서비스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또한 기계를 몇 대 도입할 것인지, 고속도로에 톨게이트를 몇 군데 설치할 것인지, 콜센터 직원은 몇 명이 좋은지 등등은 투자와 관계된 사항이다. 이처럼 고객 만족과 투자 결정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많은 경영학자와 수학자들이 이 기다림을 이론화하여 연구하고 분석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큐잉 이론인 셈이다.

 

  이 큐잉 이론은 확률을 기반으로 한 수학적 모델로, 서비스를 행하는 '서버(server)'와 서비스를 받는 '객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대기하는 객체의 수와 이들의 평균 대기 시간을 헤아려 서버의 작업률을 산출하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 서버는 서비스를 행하는 주체로 상점의 경우 계산대 직원, 콜센터의 경우 콜센터 직원이 된다. 그러나 서버가 반드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대기하는 객체가 어떤 목적을 위해 기다릴 때 이 객체의 목적을 이뤄 주는 모든 것은 서버가 될 수 있다. 붐비는 커피전문점에서 사람들이 빈 테이블을 기다릴 때는 이 테이블이 서버가 된다. 즉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적은 빈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테이블이 서버가 되는 것이다.

 

  큐잉 이론이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인 직관과 상반되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앞에서 K씨의 경우 일하는 택시와 노는 택시의 수를 10분마다 기록했더니 평균 70퍼센트의 택시만이 작업 중이어서 30퍼센트의 택시를 처분했다. 큐잉 이론 관점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비율을 서비스율이라 한다. 택시 회사의 경우 전체 택시의 서비스율이 낮다는 것은 거리에 노는 택시들이 많다는 의미다. 거리에 노는 택시가 많으므로 승객은 바로 택시를 잡아탈 수 있다. 반대로 서비스율이 높다는 것은 많은 택시들이 일하는 중이란 의미다. 대부분의 택시들이 호출한 승객을 태우러 가거나,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는 중이다. 이 경우 승객은 택시를 잡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처럼 서비스율이 높으면 기다리는 대기 시간도 늘어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직관적으로 서비스율이 10퍼센트 상승하면 기다리는 시간도 10퍼센트 상승한다는 식으로 단순히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이와 매우 다르다. 큐잉 이론에 따르면 서비스율이 100퍼센트에 가까워질수록 대기 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서비스율이 50퍼센트면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이 5분만 기다리면 되고 60퍼센트면 7분, 70퍼센트면 10분이다. 그러나 80퍼센트면 20분, 90퍼센트면 50분으로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고 100퍼센트에 가까이 도달하면 승객의 평균 대기 시간은 무한대로 급등한다.

 

  왜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올까? 바로 불규칙성 때문이다. 만일 시간당 60명의 손님이 계산대에 줄을 선다 가정하자. 그리고 간단히 한 손님당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데 정확히 1분이 걸린다면 한 시간에 60명의 계산을 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시간 동안 계산대에 줄을 서는 손님이 60명이라면 계산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은 사실이 있다. 시간당 60명이 가게 계산대에 선다는 의미는 정확히 1분에 한 명씩 계산대에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10분간 손님이 없다가 갑자기 몇 명이 함께 올 수도 있다.

 

  극단적인 예로 59분간 손님이 아무도 없다가 갑자기 60명이 들이닥쳐 줄을 선다면 마지막 줄에 선 60번째 손님은 60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산술상 시간당 평균 60명이 들어오므로 61번째 손님의 계산을 마치기 전 60명의 손님이 더 들어 올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 슈퍼마켓 계산대에 120명이 줄을 서는 상황도 이론적으로는 발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의 유휴 서버가 없다면 성난 고객의 언성은 각오해야 한다. 음식점을 운영하거나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 직원들이 잠시 일이 없어 쉰다고 직원을 잘랐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 장영재의 '경영학 콘서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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