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이탈리아]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쉬는 도시, 로마 - 판테온, 나보나 광장

늘푸르른나 2011. 9. 2. 08:00

기원전 27년 올림포스의 모든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아그리파가 만들었다는 판테온(Pantheon)은 '모든 것'을 의미하는 Pan과 '신'을 의미하는 Theon이 합쳐져 그 이름 자체가 '모든 신'을 의미한다. 고대 로마 유적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신전으로 일찍이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아름답다. 미켈란젤로는 산 피에트로 사원(성 베드로 성당)의 돔을 설계하면서 지름이 43.3미터나 되는 판테온 신전의 돔을 능가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42미터의 돔에 머무르기도 했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 미켈란젤로에게도 판테온은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판테온을 찾았던 날,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테온 앞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는데 판테온 앞 광장을 가득 메우다시피한 많은 마차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날은 말들도 좀 쉬게 해 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조명 없이도 내부는 환했는데 그 비결은 돔의 중앙에 뚤려 있는 창을 통해 비춰지는 빛이었다. 기원전 시대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다.

 

 

 

돔의 중앙에 뚤려 있는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판테온에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와 통일된 이탈리아의 2대 국왕인 움베르토 1세 등의 무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은 이런 왕들의 무덤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라파엘로의 무덤이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사건을 푸는 열쇠로 자세히 묘사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더욱 유명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로의 무덤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라파엘로의 유해가 담겨 있는 석관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을 능가할 것을 두려워한 모든 것들의 어머니(자연)에 의해 라파엘, 여기에 눕다. 그가 죽는다면 그녀도 죽는다.(ILLE HIC EST RAPHAEL TIMUIT QUO SOSPITE VINCI/RERUM MAGNA PARENS ET MORIENTE MORI)'.

 

판테온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나보나 광장으로 이동했다. 나보나 광장은 86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조성한 길이 240미터, 너비 65미터의 전차 경기장 유적지로 예술가들의 광장이라고 할만큼 낭만적인 곳이다. 늘 많은 화가들로 넘쳐 나는데 우리의 홍대 입구나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그림들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많은 화가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 광장의 분위기를 느껴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그림이 젖지 않을까 내가 다 걱정이 되더라는... 

 

나보나 광장의 중앙에 위치한 강의 분수(Fontana dei Fiumi). 베르니니가 만든 작품으로 바로크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오벨리스크 아래에는 다이나믹한 4명의 남성상이 있는데 이는 나일 강, 갠지스 강, 도나우 강, 라플라타 강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한다.

 

 

나보나 광장의 북쪽에 자리잡은 넵튠의 분수. 트레비 분수도 그렇지만 로마에서 만나는 분수들은 모두 단순한 분수라고 하기 보다는 조각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나 광장의 한편에 자리잡은 레스토랑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포모도로 스파게티를 주문해 먹었다. 9유로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맛은 국내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기는 주 재료가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일뿐인데 차이가 크게 날만한 것도 없겠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어 본 느낌은 이런 것들이 이곳에서는 그저 우리의 떡볶이, 라면과 같은 분식의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에서는 이탈리아 음식이 약간은 고급화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나보나 광장 주변에서 발견한 특이한 호텔의 모습. 호텔 이름이 라파엘(Raphael)이었는데 호텔 전체를 뒤덮은 담쟁이덩굴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나보나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는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의 종교화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San Luigi dei Francesi)가 있어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래의 사진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외관으로 한때 로마 주재 프랑스 대사관이었다가 현재는 프랑스 국립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 내부의 모습. 규모가 큰 성당은 아니었지만 황금빛 아치와 천장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성당 곳곳에 걸려 있는 회화 작품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시리즈. 왼쪽부터 성 마태오의 간택, 성 마태오와 천사, 성 마태오의 순교. 1597년에서 1602년 사이에 완성된 카라바조의 작품들로 무명 화가였던 카라바조를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게 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에서 테베레 강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 정도 걸으니 저 멀리 산탄젤로 성(일명, 성 천사 성)이 눈앞에 들어왔다. 산탄젤로 성은 139년에 완성되었으며 유사시 교황의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한 곳이다. 성 위에 우뚝 서 있는 상은 미카엘 천사상으로 6세기경 로마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미카엘 천사가 페스트를 몰아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산탄젤로 성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각종 병기가 전시되고 있다. 처음에 산탄젤로 성을 봤을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곳이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살해범이 추기경들을 가두어 두었던 곳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고 난 후 내게는 더욱 이 성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성 앞에 놓여진 산탄젤로 다리의 모습. 프라하의 카를교나 뷔르츠부르크의 알테 마인교처럼 다리 곳곳에 조각상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들 작품 모두는 베르니니의 작품이라고 한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산탄젤로 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많은 성들을 보았지만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로마에서 만난 성의 모습은 왠지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로마의 다른 건축물들과는 이질적인 모습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좀처럼 성을 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나폴리에 갔을 때 이와 비슷한 모양의 성을 다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그제야 이런 스타일이 이탈리아 성의 특징임을 깨닫게 되었다.  

 

 

 

 

 

판테온, 나보나 광장, 그리고 산탄젤로 성에 이르기까지 고대 로마의 유적지로서 의미 있는 곳이었지만 화려하거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행 최대의 적인 흐린 날씨까지...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곳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판테온, 나보나 광장, 산탄젤로 성이 모두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었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읽었던 장면이 현실에서 오버랩되는 느낌, 이것도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