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이탈리아] 화산이 삼켜 버린 고대 도시, 폼페이

늘푸르른나 2011. 9. 20. 08:00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번영했던 고대 도시 폼페이(Pompeii)는 한순간에 화산재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당시 폼페이는 농업,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귀족의 피서/피한지로도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데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불의의 재앙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 셈이다. 폼페이는 1748년부터 발굴하기 시작해 현재는 도시의 약 3/5이 드러난 상태이며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폼페이에 가기 위해 나는 나폴리를 베이스 캠프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서 '남부 환상 투어'라는 이름으로 여러 여행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가이드 투어 상품을 이용하여 폼페이와 아말피 해안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루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방식의 여행에 대해서 거부감이 많았던 나는 폼페이와 아말피 해안을 꼼꼼히 둘러보기 위해 넉넉하게 나폴리에서 3박을 하는 일정을 세웠던 것이다. 나폴리의 악명은 워낙 많이 들었었지만 '뭐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래도 머물만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세계 3대 미항 중에 하나가 아닌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폴리 체류 일정을 감행했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계 3대 미항의 모습을 찾아보기 위해 나폴리 항구 주변을 열심히 배회했으나 끝내 그 실체를 찾을 수 없었다. 숙소 근처의 길을 걸어가다가는 괜시리 자신의 진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지적질을 당하는가 하면 버스에서는 하마터면 소매치기를 당할 뻔하기까지 했다. 길거리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는 워낙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오히려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명불허전. 나폴리의 악명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절감하고 나는 곧바로 과감하게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나폴리 일정 중 1박을 취소하고 아말피 해안의 도시인 포지타노에서 1박을 잡은 것이었다. 이 일정 변경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혹시라도 나처럼 나폴리를 베이스 캠프로 해서 폼페이, 카프리, 아말피 해안 등을 둘러볼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난 절대로 말리고 싶다. 나폴리에서 묵지 말고 소렌토나 포지타노, 아말피 등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정말 좋은 여행의 추억을 남기는 길임을 널리 알려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폴리에서 사철을 타고 30여 분만에 폼페이 역에 도착했다. 이 사철이라는 것이 유레일 패스도 적용이 되지 않는 개인 회사에서 운영하는 철도인데 낡고 허름하여 옛날 우리의 비둘기호 열차쯤 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나폴리와 그 주변(아말피 해안까지)의 대중 교통 수단을 모두 이용 가능하고 박물관과 미술관(특히, 폼페이 유적지 포함) 등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아르떼 카드 3일권을 27유로에 구입했기 때문에 이 사철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는 입장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줄이 50미터 이상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르떼 카드만을 믿고 있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줄을 무시하고 개찰구로 당당하게 걸어갔는데 매표소에서 아르떼 카드를 제시하고 입장권을 받아 와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아르떼 카드를 보여 주고 입장하게 해 주면 되지 참 사람 피곤하게 하는구만...'하는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입장하기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어야만 했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마리나 문(Porta Marina)이었다. 성채와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서쪽을 향하여 있는 마리나 문은 폼페이의 7개 관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그 길이 바다로 이어진다는 사실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마리나 문을 통과하여 이어지는 길. 높은 담벼락에 가려진 고대 도시의 모습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남아 있는 건축 장식으로 봤을 때 기원전 550~575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폼페이에 있는 사원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바실리카(Basilica). 기원전 2세기 후반에 도시 전반에 걸쳐서 기념물을 만드는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으로 재판이나 상업 협상 등을 위해 사용된 건물이다.

 

 

행정 건물들. 공회를 주재하고 투표 절차를 감독하는 행정관들에 의해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한다. 

 

 

에우마키아의 건물(Building of Eumachia). 직물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던 여사제 에우마키아(Eumachia)의 지원으로 지어진 건물로 직물 산업 종사자들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폼페이가 멸망했던 당시의 로마의 9대 황제였던 베스파시아누스의 수호신을 숭배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다.

 

라레스 신전. 62년에 있었던 지진 이후에 폼페이를 보호하는 신께 신의 분노에 속죄하는 의미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폼페이의 중앙 시장 건물(Macellum). 기원전 2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중앙에 보이는 12개의 주춧돌은 원추형 지붕을 떠받치는 나무 기둥을 지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 2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계단을 통해 오르도록 되어 있는 높은 연단이 특징적인 건물이다. 

 

 

 

넓고 평평한 돌이 반듯하게 깔려 있는 길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우구스투스 신전.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19~13년에 걸친 긴 원정에서 돌아와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를 숭배하기 위해 로마와 여러 도시에 지어졌던 것이라고 한다. 

 

중앙 광장 욕장(Forum baths). 폼페이의 3개 목욕탕 중 하나로 기원전 80년 이후에 지어졌으며 그 원형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폼페이 곳곳의 도로들. 비록 건물들은 붕괴되어 기둥과 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었지만 도로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었는데 요즘의 도로와 같이 수레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경계석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모습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파운의 집(House of the Faun). 기원전 2세기경에 지어진 집으로 폼페이에서 가장 크며 그 규모가 2970㎡나 된다고 한다. 앞 마당 중앙에 놓여진 조그만 청동상이 바로 파운의 상이라고 하는데 크기는 작아도 무려 기원전 2세기의 작품이다.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집답게 집 안에 큰 정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물론 이곳의 나무들이 그 옛날의 나무들은 아니겠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는 폼페이에서 보기 드문 푸르름을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고대 사냥의 집(House of the Ancient Hunt).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방마다 사냥하는 장면들이 벽면 가득히 그려져 있는데 그 보존 상태가 뛰어난 편이다.

 

빵집. 나무를 태우는 화덕과 밀가루를 만드는 돌들(우리의 맷돌과 비슷한 원리의)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겨져 있었는데 2000년 전에도 빵집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다.

 

 

 

매음굴(Lupanare). 독특한 외관으로 인해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었는데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어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폼페이에는 여러 개의 매음굴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방 1개 짜리이거나 가게의 일부 방을 사용하는 정도였는데 이 건물은 2층 구조로 총 10개의 방이 있으며 폼페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매춘부들은 그리스나 동양 출신의 노예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며 매춘 가격은 2에서 8까지 정해졌다고 한다(와인 1인분 가격이 1이라고 했을 때). 인류의 탄생과 함께 매춘은 시작되었다고 하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내부의 벽면에는 성행위를 묘사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되어 꽤 선명한 편이었다.  

 

 

 

 

방은 작은 침대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굉장히 작은 규모였는데 침대가 바로 돌침대라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옛날 돌침대 위에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고 한다. 

 

방과 돌침대가 거의 일체형이어서 이쯤되면 붙박이 침대라고 해야겠다. 

 

 

매음굴 1층의 구석에는 이렇게 생긴 화장실이 있었는데 저 작은 구멍에 도대체 어떻게 볼일을 보았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대극장(Great Theatre). 기원전 2세기에 지어진 극장으로 약 5,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하며 광대극, 연극 등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소극장(Small Theatre). 기원전 80년경에 지어졌으며 최적의 음향 효과를 위해 원래는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뮤지컬이나 시 낭송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시스 신전(Temple of Isis). 기원전 2세기 말에 모성과 다산의 여신인 이시스(Isis)를 숭배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둘러본 코스가 폼페이 가이드 맵에서 제안하는 가장 짧은 코스(2시간 짜리)를 둘러본 것이었다. 워낙 방대한 곳이어서 하루를 모두 투자해도 다 둘러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앉아서 쉴만한 곳도 없어서 짧은 코스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각각의 주요 장소들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아서(이정표 등이 잘 되어 있지는 않음) 실제로는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폼페이 유적지의 입구인 마리나 문을 향해 걸으면서 내가 참 꽤 먼 거리를 걸어왔음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나오는 길의 풍경들.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었던 탓인지 폼페이를 둘러본 소감은 약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고대 로마 시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었거나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관광객의 관점으로서는 큰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거대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