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이탈리아]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쉬는 도시, 로마 - 테르미니 역 주변

늘푸르른나 2011. 9. 2. 08:00

로마 여행의 관문인 테르미니 역은 1942년 무솔리니의 지시에 의해 착공되어 중간에 전쟁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국내 및 국제 열차 뿐만 아니라 A, B선의 2개의 로마 지하철이 유일하게 교차하는 지점으로 명실상부한 로마 관광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테르미니 역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규모로 굉장히 넓은 규모를 자랑하지만 역 전체를 통틀어서 화장실(그것도 유료 화장실)이 지상 2층과 지하 1층의 단 두 군데밖에 없고 지상 1층에 있는 단 두 대의 현금 인출기는 고장으로 사용 불가능하기가 일쑤여서 국제적인 관광 도시의 관문이라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남자 화장실에 가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테르미니 역 근처의 숙소에 짐을 풀고 처음으로 찾았던 곳은 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였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는 로마 4대 바실리카식 교회의 하나로 325년 교황 리베리우스의 꿈에 나타난 성모마리아가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건축하라고 계시했는데 한여름인데도 실제로 눈이 내렸다고 하는 전설이 깃들어 있으며 눈이 내린 곳에 431년에 기초를 세우고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의 뒷편 모습. 앞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며 넓은 광장 한 가운데에 오벨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테르미니 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시원한 분수가 인상적인 공화국 광장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곳의 한편에서 고대 목욕탕 모양의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였는데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6년에 만든 고대 로마의 최대 목욕탕인 테르메 디 디오클레치아노가 있던 곳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여 만들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 내부의 모습. 겉은 허름해도 내부로 들어가면 이렇게 번듯하다. 그런데 목욕탕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성당이어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봐 왔던 성당들과는 그 내부 구조가 좀 달랐다. 마치 넓은 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 앞의 공화국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 1870년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여 조성한 원형 광장으로 중앙에 있는 4인의 청동 여인상이 조각된 나이아디 분수가 아름답다. 근육질 남성이 안고 있는 정체 불명의 대형 물고기에서 시원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특히 인상적인 분수였다. 

 

 

 

 

공화국 광장에서 한 3분 정도 걸으니 또 다른 유명한 성당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Chiesa Santa Maria della Vittoria)였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환희'가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은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 이름 모를 교회 건물이며 실제 주인공은 그 바로 옆에 보수 공사를 위해 가림막을 두르고 있다(그래서 찾는 데 좀 애를 먹었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 내부의 모습들. 약간은 무거운 느낌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성당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문제의 '성 테레사의 환희'. 성녀 테레사가 꿈에서 천사에게 금으로 된 불화살을 맞고 희열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주제로 베르니니가 만든 작품으로 성녀의 표정이나 몸짓을 관능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에서 다시 15분 정도 걸어서 바르베리니 광장(Piazza Barberini)에 도착했다. 바르베리니 광장은 트레비 분수와도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광장 중앙에는 1643년에 베르니니가 만든 트리토네의 분수가 있었다. 바다의 신인 트리토네를 모델로 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공화국 광장에서 본 나이아디 분수에 비교하니 상대적으로 굉장히 초라해 보이는 분수였다. 

 

바르베리니 광장에서 베네토 거리로 들어서 언덕길을 조금 오르니 1624년에 지어진 해골의 사원(Chiesa di Santa Maria della Concezione)을 만날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교회의 모습이었는데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지하 예배당에 수백 년 동안 모은 4000여 구의 해골이 장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프란체스코회에 소속된 수도사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흙에 묻히는 전통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흙이 모자라게 되자 땅속에 묻히지 못한 뼈들을 추려서 이렇게 지하 예배당을 장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원 내부의 모습. 역시 평범한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 예배당에 내려갔을 때 온 벽을 빽빽하게 장식하고 있는 뼈들을 볼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사람의 뼈는 처음 본 것 같은데 너무 많다 보니 마치 인공 뼈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 특이했던 점은 굉장히 엄숙하고 신성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뼈를 부위별로 따로 모아 일정한 모양을 갖는 형태로 장식을 한 것이었는데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하 예배당은 굉장히 성스러운 곳이어서 사진 촬영이 절대 금지되어 있었는데 내 눈으로 본 것을 사진처럼 상세히 묘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로마에서 이동의 편의를 위해 테르미니 역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었는데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로마의 3대 젤라토 전문점 중에 하나인 '지오바니 파시(Giovanni Fassi)'가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는데 그 유명세에 걸맞게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880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30년이나 된 역사 깊은 가게이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던 다른 젤라토 가게들에 비해서 이곳은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굉장히 큰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빈자리가 없음은 물론이고 젤라토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했는데 그래서 더욱 그 맛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의 사진은 2유로를 내고 구입한 젤라토의 모습인데 3가지 맛에 생크림까지 얹어 주니 푸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개인적으로 맛과 양 모두에서 이탈리아에서 먹어 본 젤라토 중에서 최고였는데 '아, 이래서 이곳이 그렇게 유명하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맘에 들어 로마를 떠나기 전에 한 차례 더 찾아가기도 했다.

 

로마를 다니다 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명소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종종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탈 필요성을 잊게 된다. 테르미니 역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그랬는데 그만큼 많이 걷게 되는 부작용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정말 깨알 같이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