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얻는 지혜

인페르노(Inferno)

늘푸르른나 2013. 9. 13. 13:19

  비스케이 만에서 3만 4천 피트 상공, 알리탈리아 항공의 보스턴행 밤 비행기가 달빛 어린 밤하늘을 서쪽으로 날고 있었다.

 

  로버트 랭던은 문고판 <신곡>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힌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신곡> 특유의 3운구법 운율이 단조로운 비행기 엔진 소리와 어울려 랭던을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로 이끌었다. 단테의 어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랭던을 위해 쓰인 양, 물 흐르듯 우아하게 페이지를 타고 넘으며 그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일으켰다.

 

  랭던은 단테의 이 시가 지옥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만큼이나, 아무리 가혹한 시련이 닥쳐도 끝내 일어서는 인간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창밖으로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딴 세상인 것만 같은 밤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랭던은 끝없이 펼쳐진 창공을 바라보며, 지난 며칠 동안 정신없이 그를 몰아붙였던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랭던에게 이 말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온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위기의 시대에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랭던은 자신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죄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부인'은 온 세상을 휩쓴 거대한 전염병이 되어버렸다. 랭던은 절대 이것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날아가는 동안, 랭던은 지금은 제네바에 있을 두 용기 있는 여인을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쯤 정면으로 미래와 마주한 채 변화된 세상의 복잡다단함을 조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터였다.

 

  창밖의 수평선 너머 커다란 구름이 서서히 하늘을 가로지르더니, 이윽고 달을 가려 그 찬란한 빛이 자취를 감췄다.

 

  로버트 랭던은 이제 잠을 좀 자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머리 위의 독서등을 끄는 순간, 그의 눈이 다시 한 번 하늘에 닿았다. 지금 막 내리깔린 어둠 속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늘은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어 있었다.

 

---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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