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8일차] 비 내리는 밀포드 사운드를 유람하다 (12.24)

늘푸르른나 2010. 2. 23. 18:17

오늘은 퀸스타운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에 갈 예정이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창문의 커튼을 젖히고 하늘부터 확인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비가 내렸는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한데 다행스럽게도 먼 하늘부터 구름이 걷혀 가고 있었다. 나의 간절한 바램이 효과를 본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출발이 순조롭다.

 

테아나우 호수(Lake Te Anau)를 지나다가 풍광이 아름다워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아직 구름이 완전하게 걷히지 않아서 그런지 눈으로 봤을 때에는 아름다워 보였는데 사진으로 찍고 나니 그저 그렇다.

 

테아나우 호수를 지나 약 20Km쯤 이동했을 때 거울 호수(Mirror Lakes)가 나타났다. 주변의 풍경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호수라는 의미에서 거울 호수라고 한다는데 생각처럼 맑고 투명한 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물이 깊지 않고 아담하여 호수라기 보다는 연못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호수만 놓고 보면 초라하지만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호수 위에 Mirror Lakes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면 표지판이 거꾸로 세워져 있는 듯 하였으나 자세히 보니 표지판이 수면에 비친 모습은 정확하게 'Mirror Lakes'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과연 거울 호수다운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인 밀포드 사운드에 점점 가까워 질수록 하늘이 더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그렇게 간절하게 기원했건만...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안개는 또 왜 그리 무성하게 피어나는지 구름 속을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머라는 사람이 수공으로 18년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1.2Km의 호머 터널(Homer Tunnel)로 진입했다. 수공으로 해서 그런지 터널안 벽면이 울퉁불퉁한 것이 꼭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머 터널을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다. 호텔을 출발한지 4시간 만의 일이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빗줄기가 굵어서 우산 없이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차장에서 크루즈를 타는 곳까지는 10분 정도 걸어야가 하는 거리인데 대략 난감했다. 차에서 시간을 보내며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크루즈 출발 시간이 임박하여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 이동해야 했다.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처럼 점퍼를 벗어 머리 위에 받쳐 들고 냅다 뛰었다. 혼자라는게 좀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

 

출발 시간이 다 되어 배에 탑승하기 전에 오늘 타게 될 배를 사진에 담았다. 배는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데 배를 둘러싸고 있는 뿌연 안개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배가 출발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폭포가 눈에 들어 왔다. 이 폭포의 이름은 보웬 폭포(Bowen Falls)로 그 높이가 161m나 된다고 한다.

 

산들이 거의 바위산이다 보니 빗물이 흘러 내리면서 곳곳에 거대한 폭포가 만들어 지는 장관을 연출했다.

 

배가 밀포드 사운드를 한바퀴 돌아 부두로 돌아 가는 길에 자연산 물개들을 볼 수 있었다. 동물원에서 보던 것 말고 자연산 물개는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 물개들이 바다에서 올라설 수 있는 몇 안되는 바위 지형이어서 항상 물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밀포드 사운드에서 볼 수 있는 2개의 대형 폭포 중 나머지 하나인 스터링 폭포(Stirling Falls)가 가까워 졌다. 이 폭포는 높이가 155m에 달하는데 관광객들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배가 폭포에 바짝 다가섰다. 설마하고 갑판에 나가 있던 관광객들이 폭포수를 뒤집어 쓰고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나는 물을 피해 얼른 선실로 들어 왔다. 선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폭포수가 장난이 아니다.

 

1시간 45분 동안의 크루즈 여행이 끝났다. 내리는 비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하고 그나마 찍은 사진들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폭포 구경은 정말 제대로 한 것 같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뉴질랜드에 오게 된다면 맑은 날 다시 한번 밀포드 사운드에 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밀포드 사운드를 떠났다.

 

밀포드 사운드를 떠나 오는 길에 협곡(The Chasm)에 잠시 차를 세우고 둘러 보았다. 바위 틈새로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래 쳐다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찍힌 사진을 보니 그런 감흥이 묻어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사진을 잘못 찍었나 보다.

 

협곡을 보고 나오는 길에 있는 운치있는 나무 다리를 사진에 담아 봤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더욱 푸르게 보였다.

 

호머 터널 앞에서 신호에 걸려 기다리는 중에 사진에 담아 봤다. 호머 터널은 양방향 통행이 허용 되지 않으며 15분 간격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도록 신호등이 작동한다. 그래서 재수없으면 꼬박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종종 이런식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는 다리도 만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라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밀포드 사운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폭포 어귀(Falls Creek)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밀포드 사운드는 크루즈 여행도 좋지만 가는 길의 곳곳에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퀸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띄는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사진 찍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다 보니 밀포드 사운드에 갈 때보다 돌아올 때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뭐 시간이 대수인가? 이런 것이 혼자서 여행하는 프리미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