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13일차] 세계 자연 유산 블루 마운틴에 오르다 (12.29)

늘푸르른나 2010. 3. 15. 17:45

이른 아침에 일어나 후딱 준비하고 7시 30분에 호텔을 나섰다. 8시 18분에 센트럴(Central)역에서 출발하는 카툼바(Katoomba)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 였다. 카툼바는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s)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데 센트럴역에서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카툼바행 기차가 1시간 간격으로 있었기 때문에 8시 18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혹시라도 놓치게 된다면 큰 낭패였다.

 

호텔에서 약 20여분 정도를 걸어서 센트럴역에 도착했다. 센트럴역은 우리의 서울역과 같은 곳인데 모든 철도 노선이 지나가는 명실 상부한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다. 건물도 옛날 건물이어서 우리의 서울역과 많이 닮아 있었다. 

 

매표소에서 카툼바행 왕복 티켓을 AUD $24.4에 구매하고 카툼바행 기차가 서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한국에서도 15년 전에 정동진행 무궁화호 기차를 타 본 이후로 기차를 타 본 적이 없었던지라 오랫만의 기차 여행에서 묘한 흥분이 느껴졌다. 

 

기차에 올라탔는데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층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나도 2층으로 올라가 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반적으로 기차 내부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것 보다는 약간 낡고 오래된 듯한 느낌이 풍겨 나왔다. 굳이 우리의 기차에 비교하자면 예전의 통일호 같다고나 할까...

 

2시간 만에 카툼바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익스플로러 버스(Explorer Bus) 예약 사무실로 들어가 1일 자유 이용권을 AUD $34에 구입했다. 블루 마운틴은 워낙 넓고 둘러 볼 곳이 많아서 걸어서는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거나 익스플로러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익스플로러 버스는 총 29개의 정류장을 순환하게 되는데 30분 간격으로 차량이 배차되었다. 티켓 역할을 겸하는 가이드 북에는 블루 마운틴의 명소들에 대한 상세한 지도가 들어 있었는데 등산로와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함께 설명되어 있어 처음 와 보는 사람들도 쉽게 둘러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너무 좋았다. 예약 사무실로부터 한글로 된 안내서를 추가적으로 얻었는데 권장하는 코스가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점을 해결할 곳을 찾아 보았다.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었는데 Subway였다. 이번 여행길에 아점은 거의 샌드위치로 때우다 보니 이제는 Subway가 너무나 친근했다.

 

빨간색의 익스플로러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카툼바 계단 폭포(Katoomba Cascades)에서 내렸다. 카툼바 계단 폭포를 찾아 등산로를 따라 가는데 마치 돌을 쌓아 올려서 만든 것 같은 바위산이 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카툼바 계단 폭포에 도착했다. 과연 이름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계단 모양으로 나 있는 바위 위로 물줄기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폭포에서 내려온 물은 작은 시내를 따라 흘러 가고 있었다.  

 

카툼바 계단 폭포를 지나 익스플로러 버스 정류장이 있는 시닉 월드(Scenic World)까지의 약 20여분 거리의 등산로를 따라 걷는 동안 곳곳에 아름다운 곳들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에 담았다. 

 

시닉 월드에 도착하자 마자 건물 1층에 있는 화장실부터 찾아 들어갔다. 시닉 월드는 예전에 석탄 광산으로 유명했던 곳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것으로 레일웨이(Railway), 케이블웨이(Cableway), 스카이웨이(Skyway)의 3가지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건물 내부는 이들 상품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티켓을 사기 위해서 길게 줄지어 있었다. '한번 타 볼까?'하고 관심이 있었던 나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급한 배설 문제는 해결했는데 가볍게 등산을 좀 했더니 갈증이 많이 났다. 건물 2층에 보니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올라갔다. 한쪽 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병을 꺼내 들고 계산도 하기 전에 우선 마시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카운터에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이 보였다. 그 줄 뒤에 가서 줄을 섰는데 이게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 내 계획은 물만 사 가지고 얼른 익스플로러 버스 정류장에 가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를 타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타고 왔던 버스에서 내린지 25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근데 이 줄 상태로 봐서는 계산하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리게 생겼다. 생수 한 병 값 계산하는데 1시간을 기다려야 하다니 이건 좀 아니었다.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내 안의 악마가 유혹했다. '그깟 생수 한 병인데 어때? 지금 시간이 없잖아?'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먹던 생수 값을 계산하는 것을 포기하고 조심스럽게 카페테리아를 나왔다. 다행히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휴~.

 

양심을 팔아 먹은 덕에 기다리는 시간 없이 익스플로러 버스에 탑승했다. 허니문 전망대(Honeymoon Lookout)에서 내려 에코 포인트(Echo Point)까지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에코 포인트는 블루 마운틴에서 가장 유명한 세 자매 봉(The Three Sisters)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블루 마운틴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걸어 가다가 자이언트 계단길(Giant Stairway)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만났다. 익스플로러 버스 예약 사무실에서 받은 한글 안내문에 '자이언트 계단길을 조금 따라 내려가 장엄한 경관을 자랑하는 세 자매 바위를 감상하십시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이언트 계단길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때는 이게 불행의 시작이란 걸 몰랐다. 안내문에 있던 '조금'이라는 문구가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을 줄이야...

 

아래의 사진은 자이언트 계단길에서 찍은 세 자매 봉 중 첫 번째 바위의 모습이다. 나머지 2개의 바위는 이 첫 번째 바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이게 세 자매 봉을 이루는 바위인 줄도 전혀 몰랐다. 쩝, 바보같이... 

 

쉬지 않고 꼬박 20분을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자이언트 계단길의 끝에 도달했다. '자이언트'의 의미를 너무 과소평가한 나머지 중도에 발길을 돌리지 않고 계속 갔더니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것이었다. 정말로 계단길은 '자이언트'라는 이름이 붙어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무가 우거져서 그런지 계단길을 내려가는 동안 세 자매 봉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사실은 세 자매 봉을 이미 지나쳤는데 몰랐을 뿐이었다). 완전히 낚인 기분이었다. 지도를 보니 원래 목적지였던 세 자매 봉 광장에 가려면 왔던 계단길을 되짚어 가는 길이 최단 경로였다. 하지만 내려오는데 20분이 걸리는 계단길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안내문에 '조금' 따라 내려가라고 되어 있었던 것은 조금만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였던 것을... 

 

자이언트 계단길을 다시 올라가는 대신에 세 자매 봉 방향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자매 봉 바로 아래 지역임을 의미하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위로 올려다 보아도 세 자매 봉은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허망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어 2시간여 만에 아까 들렸던 시닉 월드에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길을 나는 산길을 되짚어 걸어갔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생수 공짜로 먹었던 죄과를 제대로 치른 것 같았다. 그 험난했던 시간 동안 그래도 좋은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애써 위안을 삼았다. 

 

시닉 월드 앞에서 다시 익스플로러 버스를 타고 블루 마운틴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에코 포인트(Echo Point)에서 내렸다. 이 곳에 오기까지 참 먼길을 돌아 왔다. 전망대에 섰더니 광활한 블루 마운틴이 한눈에 들어 왔다. 크게 소리치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 올 것도 같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기암절벽들도 아름다웠으나 뭐니 뭐니 해도 세 자매 봉(The Three Sisters)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 자매 봉에는 아름다운 세 자매가 마왕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바위로 모습을 바꾸었는데 그 뒤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서 내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갈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 보며 적당한 사람을 물색했다. 저만치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샤프하게 생긴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동구 유럽계 백인이었다. 눈에는 검은 선그라스를 꼈는데 흡사 첩보 요원 같아 보였다. 그 친구에게 다가가 사진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찍어 주긴 했는데 카메라를 너무 얼굴에 들이대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좀 멀리 떨어져서 다시 한번만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아래의 사진 2장을 얻었다.  

 

내 카메라를 돌려 받는데 그 친구가 자기 사진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흔쾌히 카메라를 받아 들었는데 DSLR인데 LCD를 꺼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속으로 'LCD도 사용하지 않고 뷰파인더만 사용해서 찍는 것을 보니 굉장한 고수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뷰파인더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어 줬다. 카메라를 건네 줬는데 그 친구 사진을 확인해 보더니 굉장히 떫은 표정을 지었다. '유럽인이라 그런지 감정 표현이 너무 솔직하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방향까지 가리키면서 사진을 한 장 더 찍어 달라고 했다. 긴장하여 최대한 정성껏 두 번째 사진을 찍어 주었다. 카메라를 받은 그 친구는 사진을 확인하더니 이번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했는지 고맙다는 말을 대충하고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그 친구와 헤어져 뒤 돌아 걸어가면서 그 친구가 찍어 줬던 내 사진을 확인해 봤다. 그제야 그 친구가 원했던 것을 알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세 자매 봉'이 자기의 머리 옆에 가리지 않고 온전하게 나오길 바랬던 거였다. 찜찜한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벌써 사진을 부탁하고 있었다. 우이씨~. 괜시리 나의 작품 세계가 무시 당한거 같아서 마음이 상했다.

 

광장 한복판에서는 바야바처럼 생긴 분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큰 파이프처럼 생긴 악기에서는 '붕~ 붕~ 붕~'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행색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합했다. 그래서 그분의 옆에는 계속 누군가가 잠시 앉았다가 가고는 했다.  

 

다시 익스플로러 버스를 타고 로라 계단 폭포(Leura Cascades)로 이동했다. 로라 계단 폭포에서 고든 폭포(Gordon Falls)까지 이어지는 1시간 정도의 등산로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든 폭포 앞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익스플로러 버스 시간이 채 1시간 15분이 남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자칫하면 걸어서 기차역까지 가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거의 경보 수준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가끔씩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나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다가 다시 뛰다시피 걷기를 반복했다. 아마 누군가가 내 모습을 봤다면 '블루 마운틴의 날다람쥐'라고 소문이 났으리라... 

 

다행히 마지막 익스플로러 버스가 출발하기 5분 전에 고든 폭포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카툼바 역으로 돌아왔다. 5시 25분에 출발하는 센트럴행 기차에 올라탔다. 오늘 정말 많이 걸었더니 몸이 무지하게 노곤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려고 했는데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셨다. 내 직업을 물어보셔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고 했더니 소프트웨어가 뭔지를 모르셨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드렸다. 안되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한참을 설명드렸는데 결국에는 못 알아 들으셨다. 좌절했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컴맹이셨다. 이제까지 전혀 컴퓨터를 사용해 본 적이 없으셨다. 할아버지께서 미안하셨는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가 아니라 당신께서 이해력이 떨어져서 못 알아들은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고마웠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이빨이 몇 개 없으셔서 영어 발음이 많이 샜고 알아듣기 너무 힘들었다. 피곤이 더욱 밀려왔다.

 

기차를 탄지 2시간 만에 시드니로 돌아왔다. 오늘 과도한 운동을 했더니만 저녁을 제대로 먹어 줘야 할 것만 같았다. 리버풀가(Liverpool Street)에 있는 유명한 한국 음식점인 '하나비'라는 곳을 찾아갔다. 유명세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일본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불고기에다가 군만두까지 시켜 먹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 잠 생각밖에 없었다.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