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15일차] 불꽃놀이를 보며 2010년을 맞다 (12.31)

늘푸르른나 2010. 3. 21. 04:02

10시쯤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에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전화비가 12불이나 나온 것이 아닌가. 어젯밤 오늘 만날 약속을 하기 위해 B군하고 6분 정도 통화했을 뿐인데 우리 돈으로 약 13,000원이나 요금이 나온 것이었다. 헉, 이 돈이면 휴대폰 한달 기본 요금인데...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전에 묵었던 Radisson 호텔에서도 똑같이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었는데 약간의 시내 통화 요금만을 냈었기 때문에 더욱더 황당했다. 그래도 어쩌랴. 괜히 얘기해 봤자 내 꼴만 우스워 질 거 같아 억울함을 속으로 삭히며 요금을 지불했다. 아침부터 기분 참 꿀꿀했다.

 

B군이 호텔 앞으로 차를 끌고 나타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자 친구 K양과 함께 였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B군은 거의 2년 만에 만나는 건데도 그 모습 그대로 였다. 타지에서 보니 더욱 반가웠다.

 

시드니 시내의 왠만한 곳은 다 돌아봤기 때문에 B군의 차로 시드니 교외 지역으로 나가기로 했다. 차 안에 흐르는 칙칙한 음악이 맘에 안들어 한국에서 구워 간 최신 가요 CD로 교체했다. 그런데 너무 여자 가수들 노래뿐이라고 타박을 들어야 했다. 쩝, 걸 그룹 노래가 좋은 걸 어쩌라구...

 

맨리 비치(Manly Beach)에 도착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있는 곳으로 본다이 비치와 함께 시드니의 인기있는 해수욕장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 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여서 그런지 본다이 비치에 비해서는 한적한 편이었다. 백사장은 폭은 좁은 반면에 길이가 긴 편이었다. 해변가를 따라서 난 길가에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에서 B군이 추천하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들어가 립(Rib)과 안심 스테이크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 값은 B군이 계산했다. 저넉은 내가 쏘는 조건으로...

 

맨리 비치에서 보이는 노스 헤드(North Head) 근처에 있는 한 골프장으로 이동했다. B군이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골프를 치곤 한다는데 부러웠다. B군 한국에서는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시드니에 와서 출세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커피 한잔하며 필드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도 미국처럼 캐디 없이 직접 골프 클럽을 짊어지고 다녔는데 그래서 비용도 엄청나게 저렴하다고 했다.

 

오늘의 본 게임인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시드니 시내로 돌아왔다. 불꽃놀이는 0시에 시작되는 본 게임말고도 9시에 맛보기가 있을 예정이었다. 우리는 9시에 달링 하버(Darling Harbour)에서 있을 불꽃놀이를 우선 보고 하버 브리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0시에 있을 불꽃놀이를 보기로 했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몰려 드는 사람들로 인해서 시드니 시내에는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서 차는 B군이 다니는 시드니 대학(The University Of Sydney)의 주차장에 세워 놓고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시드니 대학이 시드니 시내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줄 몰랐다. 한 30분을 걸어서 QVB(Queen Victoria Building) 근처에 있는 수영복 가게를 찾아갔다. B군이 샀던 수영복을 바꾸러 간 거였는데 힘들게 찾아간 보람도 없이 7시도 안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문이 닫혀 있었다. 괜히 헛걸음만 했다. 수영복 가게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바야흐로 새해를 맞기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달링 하버로 이동했다. 와우~. 7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항구 주변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우리도 그나마 항구에서 가까운 곳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 바로 옆에 약간의 공간이 남아 있었는데 한국인 가족들이 그 자리에 돗자리까지 펴고 앉았다. 도저히 돗자리를 펼칠 공간은 아니었는데 아주머니가 전혀 개의치 않고 돗자리를 펼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우리가 오히려 자리를 비켜 줘야만 했다. 대한민국의 아줌마는 시드니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참외를 꺼내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B군은 시드니에서는 참외가 비싼 과일이라면서 몹시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날이 컴컴해지자 오늘을 위해 준비해 온 삼각대를 설치하고 야간 촬영 테스트를 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노보텔을 촬영해 봤는데 잘 나왔다. 이 정도면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린지 꼬박 1시간 30분이 지난 9시에 드디어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연신 셔터를 눌러 댔는데 불꽃이 터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우리가 자리 잡고 앉은 자리가 불꽃이 터지는 위치에서 너무 가까워서 전체적인 그림을 잡기도 힘들었다. 10여분 만에 불꽃놀이가 끝났는데 쓸만한 사진을 건지는데 실패했다. 삼각대까지 준비해 왔는데 너무나 허탈했다.

 

아쉬운 마음을 0시에 시작되는 불꽃놀이가 남아 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0시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으므로 저녁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B군과 K양은 사람 팔뚝만한 바닷가재를 파는 곳이 있다면서 그 곳에 가자고 했다(저녁은 내가 살 차례였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가 봐서 정말 팔뚝만한 바닷가재가 있으면 먹기로 했다. 그 가게 앞에 도착해서 수족관을 들여다 봤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큰 바닷가재는 없었다. B군과 K양은 오늘따라 물이 안좋다며 많이 아쉬워 했다. 차이나 타운(China Town)에 있는 유명한 중국 음식점 '동해'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B군의 추천으로 새우 요리, 탕수육 요리, 청경채, 만두를 시켜서 먹었다. 탕수육 요리와 만두는 괜찮았는데 새우 요리와 청경채는 B군만이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B군은 여자 친구인 K양으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식사를 끝내고 11시가 다 되어서 오늘의 본 게임인 하버 브리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서큘러 키(Circular Quay)로 이동했다. 시드니 시내의 중심가인 George Street은 이미 차량 통제에 들어가 보행자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거리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시드니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은 다 쏟아져 나온 거 같았다. 곳곳에서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 술병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그리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는데 이방인인 나에게는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문득 '12월 31일 밤 종로 거리에 나와 본 외국인들도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큘러 키에 도착했다. 하버 브리지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제대로 보려면 부두로 들어가야 하는데 부두 안은 이미 초만원이었다. 사고의 위험 때문에 부두로 진입하는 통로는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 헉, 그럼 불꽃놀이는 어디서 보란 말인가? 무척 난감했다. 차선책으로 멀리서나마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저기 헤매는 사이에 0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고가도로와 건물에 의해서 많이 가려지기는 했지만 하버 브리지의 일부가 보이는 도로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그곳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멋드러지게 불꽃놀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샜다. 12월 31일 밤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버 브리지 주변으로 모여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부터 목 좋은 곳에 죽치고 있었을 텐데... 후회가 막급이었다.

 

2010년 0시가 됨과 동시에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는 하버 브리지를 중심으로 시내 고층 빌딩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계속 이어졌다. B군 말로는 불꽃놀이가 20분 이상 진행된다고 했다. 설마 하면서 지켜 보고 있는데 10분 만에 불꽃놀이가 끝이 났다. 살짝 허전했다. 역시 B군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나의 2010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흩어질 것에 대비하여 불꽃놀이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잽싸게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QVB(Queen Victoria Building) 근처에서 이제 막 운행을 재개한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차를 주차해 놓은 시드니 대학으로 갔다. B군의 차를 타고 시드니 시내를 벗어나려는데 벌써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꽃놀이 대란이라 할 만했다.

 

1시간 넘게 걸려서 B군의 집에 도착했다. 시드니 외곽에 있는 아담한 아파트였다. 너무나 피곤하여 특별한 대화 없이 씻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