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14일차] 시드니를 제대로 즐기다 (12.30)

늘푸르른나 2010. 3. 19. 01:11

지금까지 묵었던 Radisson 호텔에는 3일밖에 예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호텔을 옮겨야만 했다. 시드니에서 5박 6일의 일정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그 중에 3일은 Radisson 호텔에서, 1일은 Park Regis 호텔에서, 그리고 나머지 1일은 호텔을 구하지 못해 노숙을 해야할 판이었다. 연말이어서 호텔을 잡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12월 31일은 시드니에서 불꽃놀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아예 빈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시드니에 아는 동생 B군이 살고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12월 31일 밤에 빈대 붙기로 했다.

 

Radisson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500미터 정도 떨어진 Park Regis 호텔로 이동했다. Park Regis 호텔은 하이드 파크(Hyde Park) 근처에 있는 고층 호텔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아파트와 호텔이 결합된 형태였다. 11시도 안된 시간이어서 체크인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체크인이 안되면 옷가방이라도 카운터에 맡겨 둘 생각으로 카운터에 가서 물어 봤는데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에 짐만 두고 곧바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옆에 Subway가 있었다. 이제는 아점으로 샌드위치 먹는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고민할 거 없이 Subway로 들어갔다. Subway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여행길에 나섰다.

 

호텔에서부터 걸어서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으로 갔다. 이효리가 비타500 광고를 촬영한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식물원이라는 곳이 자칫하면 정말 볼 것이 없는 곳일 가능성이 있는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둘러 본 느낌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왕립 식물원은 하나의 식물원이 아닌 여러 가지 주제별 식물원들이 모여 있는 형태였는데 아기자기하게 이쁘게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고 고풍스런 느낌이 많이 묻어 났다. 별도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도 뜻밖이었다. 약 1시간 정도 만에 다 돌아 봤는데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드니항,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한눈에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미시즈 매쿼리 포인트(Mrs Macquarie's Point)로 걸음을 옮겼다. 오~, 정말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시드니항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미시즈 매쿼리 의자(Mrs Macquarie's Chair)를 둘러봤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총독이었던 매쿼리(Macquarie)의 부인이 항해에 나간 남편을 앉아서 기다리던 곳이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지역 이름이 미시즈 매쿼리 포인트인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미시즈 매쿼리 포인트로부터 둥그런 만을 따라 오페라 하우스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 편으로는 왕립 식물원의 끝자락이 이어지고 있고 오른쪽 편에는 시드니 앞바다가 푸르게 펼쳐져 있어서 환상의 산책 코스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 도착했다. 오페라 하우스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오페라 하우스는 크게 3개의 건물(오페라 극장, 콘서트 홀, 레스토랑)로 구성되어 있었다. 3개의 건물 중 하나가 레스토랑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바라본 서큘러 키(Circular Quay)와 하버 브리지(Harbour Bridge)도 일품이었다. 

 

서큘러 키까지 걸었다. 부둣가 주변은 많은 레스토랑들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큘러 키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Bondi Explorer(파란색 투어버스)를 타고 본다이 비치(Bondi Beach)를 향해 출발했다. 로즈 베이(Rose Bay)에서 버스가 5분간 정차했다. 시드니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곳이라서 승객들에게 둘러 볼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였다. 로즈 베이에서 바라본 시드니 시내의 전망은 과연 일부러 잠시 쉬어갈 만큼 훌륭했다. 

 

로즈 베이를 출발한 버스는 다시 갭 파크(The Gap Park)에 5분간 정차했다. 역시 둘러볼 시간을 주기 위한 거였는데 사진 찍는데 열중하다가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 버스를 향해 달려가면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더니 다행히 문을 열어 주었다. 

 

드디어 본다이 비치에 도착했다. 워낙에 유명한 비치라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해변 백사장에 발을 들였다. 정말로 가늘고 고운 모래였다. 그런데 백사장이 생각 만큼 크지는 않았다. 본다이 비치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해운대는 정말로 큰 해수욕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를 발로 느끼면서 걷고 있는데 곳곳에 가슴을 드러내고 썬탠을 즐기고 있는 젊은 처자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흐뭇한 장면에 열심히 곁눈질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참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썬탠하는 처자들도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내가 정말 이방인으로 느껴졌다. 

 

Bondi Explorer를 타고 19개의 정류장을 돌아 처음 버스를 탔던 서큘러 키로 돌아왔다. 시간은 저녁 6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우아하게 캡틴 쿡 디너 크루즈(Captain Cook Dinner Cruise)를 타고 시디니의 야경을 즐기면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7시에 출발하는 디너 크루즈를 타기 위해 부두에 있는 매표소로 갔다. 

 

Starlight Dinner($95), Captain's Club Dinner($129), Gold Dinner($185)의 3 종류의 티켓이 있었는데 그중 제일 싼 Starlight Dinner를 여행사에서 받은 10% 할인 쿠폰을 이용해 AUD $85.5(약 94,000원)에 구입했다. 부두에는 내가 탈 캡틴 쿡 크루즈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부두에서 크루즈에 탑승하기를 기다리면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하버 브리지를 사진에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7시 출발 시간을 10분 정도 남겨 놓고 크루즈 탑승이 시작됐다. 그런데 탑승을 줄 선 순서가 아닌 티켓 등급에 따라 비싼 티켓 구매자들부터 시켰다. 제일 싼 티켓을 샀던 나는 계속 사진 찍기에 열중하다가 거의 맨 마지막에 배에 올랐다.

 

선실 내부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자리를 안내 받고 앉았는데 창가쪽 구석진 자리여서 너무 좋았다. 다들 커플이나 가족 단위였는데 나만 유일하게 혼자였다. 그래도 꿀리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드디어 배가 출발했다. 그런데 바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달링 하버로 이동하더니 그곳에서 추가적인 승객들을 태웠다. 그제야 선실 내부의 빈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이제 본격적인 크루즈가 시작되었다. 코스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했고 배는 하버 브리지를 지나서 오페라 하우스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오페라 하우스를 지나친지 얼마 되지 않아 배는 기수를 돌려 다시 하버 브리지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내 기대와는 달리 2시간 30분 동안 배는 시드니 앞바다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계속 맴돌기만 했다. 디너 크루즈가 이런 것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식사는 나름 훌륭했다. 후식을 먹고 있는데 내 테이블에 서빙을 해주던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사진 찍어 줄까요?'하고 물었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모습이 안스러웠나 보다. 내가 생각해도 좀 궁상스럽긴 했다. 마치 고깃집에 혼자 가서 고기 구워 먹고 있는 느낌이랄까...

 

식사를 끝내고 3층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 위는 곳곳에 연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찰싹 달라붙어서 서로 끈적끈적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부러웠다. 난 홀로 사진질에 몰두했다. 배 위에서 보는 해질녘의 시드니는 근사했다. 하지만, 시드니의 야경은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디너 크루즈가 끝나고 배에서 내렸더니 시간은 어느덧 9시 30분이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서큘러 키 역으로 들어섰다. 시드니패스(SydneyPass)가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티켓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서 가까운 타운 홀 역에서 내렸다. 이로써 모노레일만 빼고 시드니의 모든 대중교통을 두루 섭렵하게 됐다. 시드니에서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도착했다. 시드니에 사는 B군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아침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일은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어딜 갈까?'하고 궁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처럼 홀가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