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16,17일차] 눈 내리는 서울로 돌아오다 (1.1~1.2)

늘푸르른나 2010. 3. 21. 23:14

보름간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밝았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서 집에 가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짐을 정리해서 10시쯤 성당에 가는 B군과 함께 집을 나섰다. B군의 아파트는 기차역 에핑(Epping)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B군의 차로 에핑역까지 이동한 다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는 서울에서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에핑역에서 센트럴(Central)행 기차를 타고 2층의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1월 1일이어서 그런지 기차 안은 너무도 한적했다. 기차는 센트럴역에 가는 길에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역에 들렀는데 기차역 가까운 곳에 있는 '강촌분식'이라는 상호의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B군이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글 간판도 많이 눈에 보이고 기차를 타는 승객 중에 한국인들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깜박 졸았는데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한 역에 기차가 정차해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 우리나라의 지하철처럼 안내 방송이 없어서 플랫폼에 세워져 있는 기차역 이름 표지판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깜박 조는 바람에 이번 역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기차역 이름을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기차가 오래 정차해 있는 것이 느낌이 안 좋아 잠깐 기차에서 내려 표지판을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센트럴역이었다. 얼른 기차에 올라 짐을 챙겨서 내렸다. 내가 내린 직후에 기차가 출발했는데 하마터면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칠 뻔했다. 휴~. 집에 간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방심했었나 보다.

 

센트럴역에서 공항 연결 편(Airport Link)으로 바꿔 탔다. 내가 구입했던 시드니패스(SydneyPass)에는 공항 연결 편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티켓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10여분 만에 시드니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시드니패스를 밀어 넣고 개찰구를 나가려는데 오류가 나면서 차단기가 열리지 않았다. 3~4차례 반복해서 넣어 봐도 계속 오류가 나서 굉장히 난감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주변에 역무원이 있는지 둘러 보았는데 역무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옆쪽에 있는 개찰구에서 젊은 처자 두명이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보였다. 옳거니 잘됐다. 어떻게 행동하나 유심히 보고 있는데 두 처자는 주저하지 않고 차단기를 뛰어 넘는 것이 아닌가? 헉. 난 차마 저럴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충격적이었다. 주변에 쳐다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도 냉큼 따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시드니패스의 오동작 때문이니까... 

  

2시 55분에 출발하는 홍콩행 비행 편에 탑승수속을 마쳤는데 탑승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드니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가서 사진에 담아 봤는데 역시 국제공항치고는 너무나 작다는 느낌이었다. 시드니를 경유하여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 갔을 때 시드니 공항에서 수화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고생했던 기억까지 더하면 시드니 공항은 내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여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아점으로 Hungry Jacks(Burger King인데 호주에서는 Burger King이라는 이름 대신에 Hungry Jacks를 사용함)에서 와퍼 세트를 남아 있던 현금으로 사 먹었다. 그래도 호주 달러가 남아서 맥카페에서 딸기 스무디를 사 먹었다. 배가 불렀다. 하지만 남아 있는 동전을 처분하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또 사 먹었다. 배는 불렀지만 깔끔하게 호주 돈을 처분하고 나니 마음은 뿌듯했다.

 

Qantas 항공의 홍콩행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Qantas 항공을 많이 이용했더니 이제는 너무나 친숙했다. 개인용 LCD를 통해 볼 수 있는 영화나 TV 프로그램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나마 자막이 없어도 볼만한 애니메이션 영화 'UP'를 골라 보기 시작했다. 평생 꿈꿔왔던 모험을 실천에 옮기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저녁 9시에 홍콩에 도착했다. 환승해야 할 인천행 케세이퍼시픽(CathayPacific) 항공편은 1월 2일 0시 20분에 출발 예정이어서 3시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환승을 위해 탑승구로 이동하는 길에 별다방이 눈에 띄어 카라멜 마끼야또 한잔을 샀다. 공항 내에 있는 별다방도 신기했지만 일하고 있는 4명의 직원이 모두 남자였다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인터넷이나 할 수 있을까 하고 노트북을 켰는데 무선인터넷이 무료로 접속되었다. 홍콩 공항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간 다녀 봤던 공항 중에 인터넷이 무료로 접속되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갈 곳 없는 나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시드니의 B군에게 감사의 인사 겸해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천행 비행기가 홍콩을 출발했다. 케세이퍼시픽 항공은 처음 이용해 보는 거였는데 한국행 비행기여서 그런지 중국계 승무원들이 한국말도 해서 너무 편했다. 그리고 승무원들이 아리따운 아가씨들이었다. 여행 기간 동안 Qantas 항공을 이용하면서 후덕한 아줌마, 아저씨 승무원들만 봐 왔던 터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홍콩을 출발한지 3시간 30여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차가운 새벽 공기가 엄습해 왔다. 그동안 따듯한 곳에 있다 와서 그런지 더욱 춥게 느껴졌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올림픽 대로를 달리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곳곳에는 그동안 내렸던 눈이 녹지 않은 채 쌓여 있었다. 하루 만에 너무나 달라져 버린 풍경에 지난 보름간의 일들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