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1,2일차]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 오클랜드에 도착하다 (12.17~12.18)

늘푸르른나 2010. 1. 29. 02:03

큰일이다. 13시 50분 출발 비행기인데 12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말았다. 평일 대낮에 올림픽 대로가 막히다니 별일이다. 여행 출발부터 일이 꼬이는 것이 징조가 좋지 않다. 혹시나 비행기를 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JAL 카운터로 부리나케 이동했다. 이번 여행길은 험난한 비행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국적기만을 이용해 다니던 내가 이번엔는 비국적기를 이용하고 그것도 2번의 환승을 해야만 한다. 인천에서 도쿄를 거쳐 시드니를 찍고 오클랜드까지 가야하는 빡빡한 여정인 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정말로 큰 낭패다.

 

카운터 앞에 줄 서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불길하다. 다행이 카운터에 직원이 있어 여권과 항공 Itinerary를 내밀었다. 다행히 탑승수속이 마감되지는 않았나 보다. 체크인할 수화물이 있는지 묻는다. 2번의 환승이 있기 때문에 짐을 화물칸에 실었다가는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생각에 옷가지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그냥 가지고 탑승하기로 결정했다. 항공사 직원이 100ml를 초과하는 액체류는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확인을 한다. 내가 어제 인천공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500ml 미만의 개인 위생용품은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는 데 뭔가 이상하다. 직원에게 말해 보았으나 100ml를 초과하면 절대로 안된단다. 200ml 정도 크기의 셰이빙폼이 가방에 있는 데,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절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방을 화물칸에 싣기로 했다.

 

환전 창구에서 뉴질랜드 달러와 호주 달러 각각 10만원씩 환전했다. 이번 여행길에는 가능한 한 카드로 결제할 생각이다. 뉴질랜드 달러와 호주 달러는 재질이나 문양이 거의 비슷해서 거의 구분이 안될 정도다. 특이하게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로 된 지폐다. 그래서 물에는 잘 젖지 않는 데, 한번 접으면 잘 펴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처음 이 지폐를 만든 나라는 호주이고 뉴질랜드에서는 호주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 달러]

 

[호주 달러] 

 

환전을 마치고 서둘러 탑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13시 20분에 탑승이 시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3시 30분이 되도록 탑승콜이 없다. 잠시후 방송이 나온다. 비행 준비가 덜되어 출발 시간이 14시 20분으로 30분 늦춰 졌단다. 명색이 국제선인데 이런 시답잖은 이유로 지연이라니 어이가 없다. 탑승 시간에 늦을까봐 계속 마음을 조리며 서둘렀던 나만 우습게 됐다.

 

드디어 비행기가 출발했다. 인천에서 도쿄까지 비행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출발 직후 간단한 도시락이 나온다. JAL은 처음 타보는 건 데 이런 점은 좋은 듯 하다. 앙증맞게 음식들을 도시락에 담아 놓은 것이 먹기 아까울 정도다. 도시락을 먹은지 얼마 안되었는 데 착륙 준비가 시작되었다. 일본이 거리상으로는 참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비행기가 도쿄 나리타 공항에 사뿐하게 내려 앉았다. 헉. 시계를 보니 16시다. 30분 늦게 출발했는 데도 불구하고 원래의 도착 예정시간을 맞추어 도착한 것이다. 왠지 1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는 데 괜히 비행시간을 늘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드니로 출발하는 Qantas 비행기의 출발시간이 20시여서 4시간을 나리타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 나리타 공항은 처음 와보는 것이어서 좀 둘러 보기로 했다. 공항 내부의 모습은 다른 공항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걷다가 한쪽 벽면에서 특이한 물건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자동안마의자. 역시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면에는 '퀵 맛사지(코인식) 200엔/10분'이라는 한글 안내문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주요 고객인가 보다. 뻘쭘해서 누가 사용할까 싶었는 데 의외로 몇몇 외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특히, 2명의 백인 아낙네들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안마의자에 심취해 있다. 안마의자가 상하좌우로 요동칠 때마다 아낙네들의 교성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고요한 공항에 울려 퍼진다. 차마 계속 들어 주기 힘들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챙겨간 노트북이나 사용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싶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곳은 없는지 찾아 보았다. 그러다가 후미진 곳에서 초등학생 책상 같아 보이는 컴퓨터 책상을 발견했다. 이 넓은 공간에 책상 한번 참 쪼매나다. 어쨌거나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터넷 사용설명서를 보니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나 역시나 유료였다. 인터넷은 포기하고 그냥 노트북이나 사용하려고 전원 콘센트를 찾아 전원 케이블을 꽂으려는 찰나 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110V용 전원 콘센트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뉴질랜드/호주용 돼지코는 준비해 왔지만 미처 110V용 돼지코는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입맛만 다신 채 자리에서 일어 섰다.  

 

공항에서 4시간을 삐댄 끝에 시드니행 Qantas 항공 비행기가 이륙했다. Qantas 항공 기내승무원들 전체적으로 체격이 우람하다. 심지어는 아저씨들도 보인다. 그나마 개인용 LCD 모니터가 부착되어 있어 위안을 삼는다. 열심히 볼만한 영화가 있는지 찾아 본다. 트랜스포머2 정도가 눈에 들어 온다. 트랜스포머2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트랜스포머2를 보기로 한다. 한 10분쯤 보다가 더 이상 보기를 포기한다. 자막이 없으니 리스닝의 한계에 좌절하고 만 것이다. 국내 항공사 비행기를 그리워 하며 잠을 청했다.

 

10시간 동안 '자다 깨다 먹다'를 되풀이 한 끝에 시드니에 도착했다. 1시간 후에 출발하는 오클랜드행 비행기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환승 게이트로 이동했다. 도쿄에서도 환승할 때 짐 검사를 받았는 데, 또 한번의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제는 뭐 표지판이나 설명이 없어도 가방에서 노트북 꺼내고 주머니에 있는 물건 모두 꺼내 놓고 하는 일들을 자동으로 한다.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하여 무사히 넘어 가는 줄 알았는 데, 한쪽 구석에 서있던 여자 직원이 나를 부른다. 내 국적을 묻길 래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글로 된 안내문 하나를 내게 건낸 다. 안내문을 읽어 보니 내가 샘플링 검사 대상으로 선택되었으니 짐검사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다. '내가 범죄자형으로 보이나'하는 울분이 치밀어 오르지만 협조 안할 수 없다. 그 직원은 내 가방속의 물건들을 일일이 꺼내어 확인해 본다. 참 기분 꿀꿀해 진다.

 

오클랜드행 Qantas 비행기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버스터미널 대합실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명색이 국제선인데 탑승 게이트의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다.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는 데, 트랩을 통해 바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공항 활주로로 이동하여 계단을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하는 방식이다. 헐. 이거 내가 9년전에 제주도 갈 때 김포공항에서 해 본 이후로 처음 해 보는 거다. 시드니 공항 때문에 시드니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3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2번의 환승을 해야 했던 기나긴 여정의 종지부를 드디어 찍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뿐. 인천에서 출발할 때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화물편으로 부쳤던 가방을 찾지 못한 것이다. 신고하기 위해 수화물 서비스 데스크에 줄을 섰다. 이번 항공편에는 유독 수화물 분실이 많았는지 줄이 길게 늘어서 졌다. 데스크에서는 3명의 여직원이 일하고 있었는 데 그중 2명의 여직원이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을 때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이 귀에 들어 왔다. '심봤다.' 이 대략 난감한 상황에 극심한 영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한국계 여직원 앞으로 다가가 여권과 수화물 티켓을 내밀었다. 여권을 확인한 여직원이 "한국분이시네요"라며 말을 걸어 온다.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날 뻔했다.

 

한국계 여직원에게 가방의 색상과 모양 등을 한국말로 유창하게 설명하고 오클랜드에서 1박할 호텔과 그 후에 묵게 될 로토루아의 호텔 주소를 전달했다. 여직원 말로는 시드니를 경유해서 오는 비행편의 경우 수화물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시드니 공항때문에 자기들이 매번 골탕을 먹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클랜드에 올 일이 있으면 절대로 시드니를 경유해서 오지 말라고 전해 달라고 까지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불평을 대놓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나보다 여직원이 더 안스럽기까지 하다. 가방을 빨리 좀 찾아서 보내 달라는 부탁만을 남기고 직원이 주는 오버나잇 킷을 받아 들고 렌터카 카운터로 발길을 옮겼다.

 

AVIS 카운터 앞에 이미 사람들이 있어서 줄을 서야만 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백인계 할아버지가 새치기를 하여 자연스럽게 직원과 얘기를 시작한다. 황당하지만 낯선 곳에서 영어로 따지기도 뭐해 그냥 참고 있는 데, 내 뒤에 줄 서 있던 인도계 부부가 손가락질하며 할아버지를 막 비난한다. 대충 듣자하니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도 백인들이 유색인종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인도계 부부의 비난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그 할아버지와 AVIS 직원은 눈길 한번 건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들 할 일을 계속하고 있다. 참 강적들이다.

 

한 차례의 사건이 있고 난 후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예약한 내역을 제시하고 도요타의 빨간색 코롤라를 배정받았다. 운전석이 반대편에 있고 도로에서도 좌측으로 통행하도록 되어 있는 뉴질랜드에서의 첫 운전이기 때문에 사고의 우려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보험 항목을 추가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GPS 네비게이션을 추가하려 했을 때 네비게이션이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말았다. 이건 예정에 없던 시나리오여서 참 당황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AVIS 직원이 주는 지도에 의지해서 운전을 할 수 밖에...

 

'한국에서 운전경력이 10년이 넘는 데 그까이꺼 운전석 위치가 반대이고 좌측 통행이라고 해서 운전 못하겠어?'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다행히 엑셀하고 브레이크의 위치는 똑같다. 하지만, 깜박이와 윈도우 브러쉬 조작 레버의 위치가 정 반대다. 본의 아니게 깜박이 켜야 할 때마다 윈도우 브러쉬가 작동한다. 졸지에 난 초보스러워 졌다. 우회전을 하려고 우측 깜박이 켜고 부드럽게 우회전을 했다. 우회전할 때는 차가 없었는 데 우회전 직후에 앞에서 차가 나를 향해 달려 오는 것이 보인다. 헉, X됐다. 난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 거다. 다급하게 비상등을 켜고 차를 갓길에 세웠다. 마주 오던 차의 운전자가 내게 손가락질 하는 것이 보인다.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사과의 손짓을 보냈다. 에고에고, 이게 왠 개망신이란 말인가...

 

내가 묵을 호텔은 오클랜드 다운타운의 중심가에 위치해 있고 오클랜드 공항으로부터 약 20Km 정도가 떨어져 있다. 네비게이션도 없고 혼자서 지도를 봐 가면서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최선은 가장 큰 길, 즉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도를 보아하니 1번 고속도로가 오클랜드 다운타운과 연결되고 있어 무조건 1번 고속도로만 타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길을 찾아 헤맸다. 고속도로까지 가기 위해서 거쳐 가야할 갈림길들을 열심히 되뇌이면서 운전을 하는 데 이정표도 눈에 잘 안들어 오고(이정표는 해당 방향으로 이동시 갈 수 있는 지역 정보를 표시하는 데 그 지역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거리 이름도 눈에 잘 안띄어 좌/우회전을 해야할 길을 지나쳐 버리기가 일쑤다. 뒤에서는 계속 차들이 줄지어 따라오지, 갓길이 좁아 마땅히 차를 세울 수도 없지, 유턴할 수 있는 길도 없지, 사람 미쳐 버리겠다.

 

결국 차가 거의 없는 외진 곳까지 떠 밀려 가서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지도를 보니 지금 와있는 곳은 오클랜드 다운타운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러다가는 호텔로 가지 못하고 노숙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밀려 온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사용했던 길 이름 찾기 방식을 과감히 포기하고 방향만을 찾아서 가는 방식을 사용하기로 한다. 지도를 뚤어 져라 분석하여 오클랜드 다운타운이 위치한 북동쪽 방향으로 있는 큰 지역의 지명들을 머리 속에 입력하였다. 이제는 이정표를 볼 때 내가 아는 지명만을 찾아서 그 방향으로만 계속 진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 차들이 쭉 밀려 있는 곳이 나타난다. '왜 차가 밀릴까?'라는 의구심을 갖으며 차가 밀리지 않는 좌회전 차선으로 이동하려고 하다가 저 멀리 보이는 이정표에서 고속도로 진입 표시를 보고야 말았다. '심봤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고속도로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드디어 다운타운에 들어 섰다. 여기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면 좋으련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일방통행. 많은 길들이 일방통행인데다가 일방통행이 아닌 길에서도 유턴이라는 것은 아예 없다. 해서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차를 돌려 원래의 자리로 돌아 오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처음 서울 목동에서 운전했을 때의 느낌이다. 공항에서 출발한지 어느덧 2시간이 다되어 가는 데 아직 호텔을 찾지 못하고 다운타운을 헤매고 있다. 30분 전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한 방광은 이제 최대로 팽창하여 벨트를 풀어야 할 지경이다. '차를 그냥 길에 버리고 갈까'하는 생각과 씨름을 계속 하던 차에 길 맞은편에서 호텔을 발견했다. 오, 할렐루야. 유턴이 안되는 길에서 반대편 차선으로 가려면 일방통행 길들을 돌아 돌아 가야하는 데, 도저히 답이 안나온다. 평소 준법 정신이 투철하여 교통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는 나이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다. 과감하게 불법유턴을 시도한다. 아, 드디어 호텔 앞. 현재 시간은 18시 30분(한국시간+4). 헐, 꼬박 하루가 걸려서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에서 짐을 내리려다 보니 뭔가 허전하다. 공항에서 받았던 오버나잇 킷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공항에서 렌터카 빌리면서 잠깐 근처의 의자에 내려 놓았다가 그냥 나와 버린 것이다. 참 오늘 가지가지 한다. '대체 오버나잇 킷에는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 무지하게 궁금해 진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 해봐야 겠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차를 운전해서 이동하는 것은 포기하고 가까운 곳을 둘러 보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이 오클랜드의 중심가인 Queen Street에 위치해서 걸어 다녀도 왠만한 곳은 가 볼 수 있어서 마음에 든다. 물론 호텔에 도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Queen Street를 걷다 보니 캐나다 밴쿠버의 중심가를 걸었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밴쿠버에서도 한국 사람들(특히, 유학생)을 많이 마주쳤는 데 오클랜드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Queen Street의 끝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외관상으로는 박물관이나 청사 건물 같아 보이는 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지하철 역사 건물이다. 흠, 이건 좀 있어 보인다. 

 

Queen Street의 끝에 다다르니 항구가 보인다. 고기잡이 배는 보이지 않고 페리들만 눈에 띈다. 이곳에서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페리들을 탈 수 있다. 부두위에 우뚝 솟아 있는 힐튼 호텔은 마치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물 좋은 곳에는 언제나 호텔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생각보다 다운타운이 크지는 않다. 한 10여분 만에 중심가라는 Queen Street를 종주했다. 몹시 피곤한 것이 오늘은 밥먹고 일찍 자야 겠다. 호텔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잡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는 무심결에 지나친 스카이 타워가 눈에 들어 온다. 모양이 남산타워와 거의 흡사한 것이 낯설지가 않다.

 

오랜 비행시간 동안 느끼한 것들만 먹었더니 얼큰한 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저녁은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기로 마음 먹었다. 아까 호텔 근처에서 발견했던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이름이 강남역이라 참 친숙하다. 강남역은 소개팅 하러 가는 곳인 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결정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였으나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라 이상하다. 호텔 안내 책자를 뒤적여 인터넷 사용과 관련된 내용을 찾았다. 헉, 인터넷 사용이 공짜가 아니었다. 인터넷 사용 비용이 2시간에 NZD $10, 24시간에 NZD $15나 된다. 눈물을 머금고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2시간짜리 아이디를 발급받은 후에야 인터넷 연결에 성공했다. 메신저를 로그온하자 마자 그동안 사용한 카드 사용내역이 메시지로 떴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호텔로 들어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물건을 사고 NZD $6.99를 신용카드로 결제했는 데 다음과 같이 USD $1555.03를 결제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너무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따져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인터넷으로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카드 승인내역을 확인해 봤다. 어라, 인터넷 상에서 보니 정상적으로 USD $5.03(카드결제 기준이 USD기준이기 때문에 NZD가 USD로 환전됨)이 승인된 것으로 나온다. 메신저 메시지에 남아 있는 다른 카드 사용 내역과 비교하여 살펴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점포의 상호가 사용금액과 공백없이 붙어서 표시된 것이 혼란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물건을 샀던 편의점의 이름은 바로 'FIX 155'였다.

+8215881788님의 말(오후 5:08):

[KB카드]이재록님12월18일17:08뉴질랜 FIX 1555.03(US$) 승인

 

 

 

오늘은 정말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모든 옷이 들어 있는 내 가방이 시드니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갈아 입을 옷도 없다. 청바지만 벗고 티를 입은 채로 침대에 들었다(뉴질랜드의 12월은 여름에 해당하지만 습하지 않아서 낮에도 덥지 않으며 밤에는 선선하다). 졸도할 정도로 피곤하기는 한데 여러 가지로 찜찜한 것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길 잃은 내 가방을 그리워 하면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