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호주 여행

[4일차] 로토루아를 둘러보다 (12.20)

늘푸르른나 2010. 2. 10. 19:02

어젯밤에는 속옷만 입고 잤더니 약간 감기 기운이 있는 것이 개운치 않다. 게다가 물이 바뀌어서 그런지 장염 증세 때문에 죽을 맛이다. 몸 컨디션도 안좋고 하여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프론트에서 전화가 왔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가방이 드디어 로토루아 공항에 도착하여 곧 호텔로 배송해 주겠다는 연락을 공항으로부터 받았단다. 그동안 꼬여 있던 실타래가 드디어 풀리기 시작하나 보다. 한참을 더 뒹굴다가 프론트로부터 가방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프론트에서 내 가방을 발견했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달려가 와락 안아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오랫만에 속옷을 갈아 입고 옷도 바꿔 입었더니 기분은 한결 좋아 졌는데 장염 증세 때문에 오늘 공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는데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하는 생각에 챙겨 갔던 지사제를 먹고 호텔을 나섰다. 이런 걸 두고 약물 투혼이라고 하던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와카레와레와 지열 마을(Whakarewarewa Thermal Village)로 차를 몰았다. 포후투 간헐천(Pohutu Geyser)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찾아 간 것이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로 NZD $28을 지불하니 500원짜리 동전만한 형광색 스티커를 하나 주었다. 그리고 관광 안내도를 하나 주면서 어디에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한글 안내서를 추가적으로 준다. 뉴질랜드에서 한글 안내서를 받으니 괜히 좀 뿌듯하다. 눈에 잘 띄게 옷의 가슴 부분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로써 입장 준비는 끝.

 

마을에 들어 서기 전에는 그냥 예전에 원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겠거니 했는데, 현재도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 60~70명의 원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개천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근데 물이 희뿌연 것이 별로 헤엄치기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마을 안으로 좀 들어서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오는 풀이 눈에 들어 온다. 이 풀의 이름은 파레코후루(Parekohuru)인데 온도가 90~110도에 달하여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던 풀이라고 한다. 물이 너무 맑아서 발이라도 한번 담궈 보고 싶은 욕망이 일 정도였다.

 

조금 옆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니 활발하게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가 눈에 들어 온다. 이 용천의 이름은 코로티오티오(Korotiotio). 솟아 오르는 김과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만 봐도 굉장히 뜨거운 물임을 알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자꾸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려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시선을 좀더 먼 곳으로 옮겨 보니 엄청난 수증기를 동반한 물기둥이 보인다. '이게 그 유명한 포후투 간헐천이구나'하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간헐천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바람을 타고 30~4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까지 도달하여 카메라 렌즈에 계속 얼룩이 생겨 자꾸만 닦아 줘야만 했다. 간헐천 근처에 있는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나도 좀더 가까운 곳에서 간헐천을 보고 싶어서 길을 찾아 여기 저기 마을을 돌아다녔다.

 

마을의 언덕에 올라가니 공동묘지가 보인다. 여기 저기에 세워져 있는 목조 인형들 때문인지 아담해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공동묘지 같아 보이지 않는다. 공동묘지를 지나치자 큰 문이 하나 서 있는 데 자물쇠로 잠겨 있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울타리 너머로 이어지는 길을 보니 이 문을 통과하면 포후투 간헐천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어쩔 수 없이 포후투 간헐천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나중에 포호투 간헐천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테푸이아(Te Puia)라는 곳에서 입장료를 내고 입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와카레와레와에서도 포후투 간헐천에 갈 수 있었던 것을 상업적인 이유로 별도의 관문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원주민 꼬마 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근데 영어도 아닌 원주민 언어로 얘기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영어로 몇 마디 말을 시도해 봤으나 여전히 원주민 언어로만 말한다.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으니 참 답답하다. '저 녀석이 설마 욕하는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마저 든다. 꼬마가 길가의 낮은 담에 올라 가려 한다. 왠지 '내가 포즈 취해 줄테니까 사진 찍고 싶으면 찍어요'라고 행동하는 것 같아 얼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 봐서 그런지 그 녀석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 한번 강렬하다.

 

마을 중심부에 다다르자 강당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건물이 참 단순한 것이 토속적으로 느껴진다.

 

마을 강당을 지나 마을 뒷편으로 나 있는 1시간 거리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호수(Green Lake)가 나타났다. 호수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물 색깔이 녹색인 것이 무척 특이하다.

 

오르막 길을 따라 계속 걸었더니 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정상에 다다랐다. 마을 주변 곳곳에 물 웅덩이들이 있고 수증기가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것이 사람이 모여 살만한 곳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도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와카레와레와 지열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 로토루아 호수로 이동했다. 어제 저녁에 잠깐 둘러 보긴 했지만 밝을 때 제대로 보기 위해서 였다. 1시간 전에 소나기가 잠깐 내렸다가 개인 후여서 그런지 걷혀 가는 구름과 파란 하늘, 그리고 호수가 멋드러진 장면을 연출해 주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냥 하늘만을 찍었을 뿐인데 이 것도 하나의 그림이다.

 

지사제의 부작용 때문인지 속에 가스가 차고 복부 팽만감이 극심한 것이 더 이상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이다. 일단 호텔로 복귀하여 소화제를 먹었다. 저녁 시간은 다가 오는데 오늘의 상태로는 저녁을 먹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녁 9시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세계 10대 스파에 들어간다는 폴리네시안 스파(Polynesian Spa)에 가 보려고 수영복과 수건을 챙겨서 호텔을 나섰다. 평소 스파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스파인 만큼 몸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요금이 NZD $20으로 제일 저렴한 Adult Pools의 입장권을 구입하여 입장하였다. 요금이 비싼 Lake Spa와는 입장 통로가 구분되어 있다. 탈의실 입구에 네모난 플라스틱 통들이 늘어서 있는 선반이 보인다. 사용 가능한 것은 플라스틱 통이 엎어져 있으며 사용중인 것은 옷가지들로 채워 져 있다. 빈 플라스틱 통 하나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가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옷가지들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선반에 가져다 두었다. 요금이 비싼 Lake Spa는 수건, 비누, 샴푸, 라커 등이 제공되는 거에 반해 Adult Pools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는다. 역시 싼게 비지떡이다.

 

건물 내부에 있는 큰 풀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더니 6개의 풀이 보였다. 그 중 로토루아 호수와 가장 가깝게 위치한 풀에 가서 몸을 담궜다. 야외 온천에 몸을 담그고 바라보는 호수의 야경이 꽤 운치가 있다. 그러나 호수를 바라보던 시선을 물 위로 옮기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던 수 많은 '때'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야 말로 다국적 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풀을 찾아 일어 섰다. 나머지 풀들을 차례 대로 한번씩 들어가 보았다. 풀별로 물의 온도차가 있어서 어떤 풀은 약간 뜨겁고 어떤 풀은 미지근했다. 그 중 3개의 풀은 계단형으로 되어 있어서 위로부터 아래쪽으로 물이 흘러 내리게 되어 있었는데, 그런 구조 때문인지 제일 위에 있는 풀은 그래도 물이 깨끗하여 편한 마음으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유황 성분이 들어 있는 물이라니 피부를 생각해서 얼굴에도 골고루 발라 주었다.

 

1시간 정도 온천을 하고 났더니 몸은 많이 개운해 진거 같은데 저녁을 걸렀더니 속이 좀 허전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먹을 것좀 사려고 했는데 모든 편의점들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닌가? 헉, 10시 좀 넘었다고 문을 닫다니 너무했다. 주유소에서 물건도 같이 팔았던 것이 생각나서 호텔에서 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주유소까지 걸어갔다. 주유소 점포에 불이 켜져 있고 점원이 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 있다. 헐, 알고 보니 밤에는 점원과 작은 창구(터미널의 매표 창구와 같이)를 통해서만 물건을 주문하고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뭐 먹을만한 것이 있는지 둘러보고 사려고 했었는데 뜻밖의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결국 물건 사는 것을 포기하고 호텔로 그냥 돌아 왔다.

 

호텔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는데 허기가 밀려 와 잠이 오지 않는다. 뭔가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호텔 3층에 벤딩 머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반가운 마음에 3층으로 가서 벤딩 머신을 찾았는데 코인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수중에는 지폐 밖에 없는데 또 좌절이다. 궁하니까 용감해 진다. 프론트에 가서 지폐를 코인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바꿔 준다. 아, 이제야 살았다. 바꾼 코인으로 스니커즈와 환타를 사서 맛있게 먹었다. 배가 든든해 지니 이제 잠이 좀 올 것 같다.